21일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 게시된 제주4·3 관련 현수막. 이상국기자
[한라일보] 제75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을 2주일 여 앞두고 제주 전역에 제주 4·3이 북한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파문이 일고 있다.
21일 오전 제주시청 조형물 앞 거리에 '제주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해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이 현수막은 우리공화당과 자유당, 자유민주당, 자유통일당 등 4개 정당과 1개 단체가 공동 제작해 게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게시 기간은 4·3추념식 하루 뒤인 내달 4일까지다. 이 현수막은 제주시청을 포함해 제주 전역 80곳에 게시된 상태다.
자유당 관계자는 현수막을 내건 이유 대해 "국민의힘 태영호 국회의원이 '제주4·3사건이 북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발언한 후 더불어민주당이 제주 곳곳에 '4·3은 대한민국의 역사다'라는 현수막을 게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현수막을 준비했다. 4·3에 의해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피해를 입은 것은 인정하지만 촉발 원인 등 역사를 바꿔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우리공화당 관계자도 "4·3은 '5·10 선거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라'는 김일성 등의 지령을 받아 남로당이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주4·3유족회는 이들이 내건 현수막에 대해 "진실을 왜곡·폄훼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4·3유족회 관계자는 "오늘(21일) 오전 제주시 오라동 도로에도 같은 내용의 현수막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주민센터에 철거를 요청했지만 센터 측은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정당 활동으로 게시된 현수막이어서 철거하기 힘들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이어 "유족들 한을 풀어줄 제75주년 제주4·3 추념식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우리공화당 등 4개 정당이 유족들 가슴에 큰 상처를 주고 있다"며 "도민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국민의힘 태영호 국회의원은 지난달 13일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제주 합동연설회'에서 "제주4·3은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는 발언으로 제주 도민사회에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후 제주 정치권과 도내 4·3 단체, 제주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잇따라 성명을 발표해 "태 의원이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를 부정하며 철 지난 색깔론으로 4·3을 왜곡하고 있다"며 사과와 함께 국민의힘 최고위원 후보에서 사퇴하라고 촉구했지만 태 의원은 후보직을 유지해 지난 8일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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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부에 의해 발간된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는 제주4·3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해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