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36] 2부 한라산-(32)'한라'의 뜻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36] 2부 한라산-(32)'한라'의 뜻
449년 만의 과감한 도전, '한라'의 재해석
  • 입력 : 2023. 04.11(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라'는 과연 무슨 뜻인가?

[한라일보] '한라라고 하는 것은 운한을 잡아당길 만큼 높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운한이란 은하수를 지칭한다. 이런 내용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한 이래 지금까지 누구도 의심의 여지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책은 1481년(성종12)에 50권으로 간행한 '동국여지승람'에 1530년 속편 5권을 더하여 55권으로 간행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현재 일본 경도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 유일하며,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된 것은 1611년(광해군3)에 복간한 목판본이라고 한다. 이 두 문헌은 내용에 변동이 거의 없다고 하니 '한라라고 하는 것은 운한을 잡아당길 만큼 높다'는 뜻이라고 한 설명은 지금부터 542년 전 이야기가 된다.

알방에오름에서 본 산철쭉

그러나 이 설명은 한편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쓰고 있는 이 이름이 왜 느닷없이 의심스럽다는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건 분명히 우리 고전에 씌어 있기 때문 아닌가?

과연 한라산이란 은하수를 잡아당길 만큼 높아서 붙은 이름일까? 제주도에서는 왜 은하수를 끌어당겨야 했나? 보통 은하수란 건너는 강이지 끌어당기는 대상이 아니다. 이 이름을 처음 지은 사람은 누구며, 그런 내용은 어떤 기록에 나오는가? 그렇다면 한자를 쓰는 사람이 처음 이 이름을 붙였고, 당시 모든 제주도민에게 전파되어 합의할 수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고 해도 한라산을 왜 하로산, 한라산, 한락산, 한로산, 할락산, 할로산, 할로영산처럼 여러 가지로 부를까? 그냥 살다 보니 이렇게 다양하게 부르게 된 것이었을까?

지금까지 한라산 관련 지명들을 검토해 봤다. 수많은 식자가 백록담을 흰 사슴과 연관 짓지만 알고 보면 호수라는 뜻이다. 물장오리오름은 '창 터진 물'이라는 정도의 설명이 있지만 결국 호수라는 뜻이다. 두무악, 두모악, 원산 등도 '머리가 없는 산', '솥 혹은 두멍 같아 붙은 이름'이라는 설명이 있지만 '가장 높은 곳의 오름', '정상의 오름'의 뜻임을 알게 된다. 가메오름 역시 '가마(솥) 같이 생겨서 붙은 이름'일 것 같지만 '가장 높은 오름이자 바위로 된 오름'이라고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혈망봉 역시 가메오름의 이두식 음가자 표기임을 알게 된다.

한라산순례기

그저 ‘생각한다’를 사실인 양
받아들이는 뿌리 깊은 학문풍토

역사에 나오는 선현의 말씀이라 해도 사실 여부를 규명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어떠한 설명의 근거도 없이 그저 '생각한다'를 마치 사실인 양 받아들인다면 오로지 그 기록 시점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상과 선현을 존숭하는 나머지 아무런 비판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받아들이는 이런 태도는 매우 오래된 관행으로 타파하기 어려운 지경이 이른 것이다. 이런 태도가 아직도 542년 전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듯이 '은하수를 잡아당길 만큼 높아서 붙은 이름'이라는 이야기를 아직도 고수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과감히 탈피하고자 한 분이 있었다. 이런 내용을 모를 리 없지만 대부분 소위 식자라는 이들이 이를 받아들이지도 않을뿐더러 비판도, 심지어 기록조차도 하지 않는다.

백양환민(白楊桓民)이란 분은 불교사에서 1930년 2월 발행한 잡지 '불교' 68호부터 같은 해 11월 77호까지 10회에 걸쳐 '한라산 순례'를 연재했다. 이 글은 그 전 해에 한라산을 비롯한 제주도 거의 전역을 여행한 기록이다. '고기', '탐라지', '동국여지승람' 등 다양한 책을 인용하여 그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여행 기간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1929년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라산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부분 읽기 편하게 줄이고 다듬었다.

"방선문에서 바로 올라가는 코스를 놔두고 소림당(소림사의 잔해라 함) 앞을 거쳐 삼의악 앞의 작은 계곡 봉우리 밑으로 작은 초가집으로 된 한라산전지양봉원(漢拏山轉地養蜂園)을 거쳐 나아갔다. 관음사에서 하룻밤 자고 서쪽으로 우회하여 등산로를 따라 천연림지대로 접어들었다. 수림 속 돌 경사로로 1리 남짓을 뚫고 올라서니 또다시 무림지대다. 땅에 딱 붙은 조릿대군락이 나왔다. 한 쌍의 노루가 놀라 달아나다 도리어 달려들려 한다. 개미등이라는 중턱을 올라섰다. 만장절벽이 나타났다. 오전 열시 반경 상상봉이 말쑥하게 보였다, 계곡을 내려가 석간수를 마시고 올라오니 구상나무 고사목, 산철쭉, 눈향나무가 덮였다. 말 방목지를 지나 6, 7리에 영실에 닿았다. 오백장군, 존자암, 동남쪽 폐굴 상태의 수행굴, 1리 위에 칠성대를 지났다. 여기서 동으로 한참으로 가다가 깎아 지른 석벽을 마주했다. 한라산 절정이다. 해발 3785척이다. 사면으로 빽빽한 봉우리들이 천연성곽같이 둘러싼 그 안으로 천수만만한 대택이 차지하여 저 아래로 내려 보인다."

‘운한을 잡아당길 만큼 높은’
견고한 아성에 도전한 사나이

이런 과정으로 한라산을 오르고 '한라'란 뜻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제시했다. '운한을 가히 나인함으로써 한라산이라 하였다 한다. 여기에 올라와 보니 이것은 견강부회인 듯싶다. 이것은 다만 한자 범위 안에서만 해석하고, 그 외의 뜻을 생각해 보지도 못하는 해석이라 아니할 수 없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한라산이라 함은 이곳 우리 고어로 '한울산'이라 하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곳 말로 '한울올음'이다. 후대에 와서 점차 언어변천을 겪어 한자 수입 이후 한자로 기록하면서 음과 뜻이 유사한 글자로 한라(漢拏) 2자를 충당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두무라 하는 것도 차라리 '미무(尾無)'란 별명을 더하고 싶은 감이 있다."

한라산은 제주말로 '한울올음'이었던 것이 우리 국어로 '한울산'으로 되고, 이걸 한자로 표기한 것이 '한라산(漢拏山)'이라는 설명이다. 과연 탁견이다. '동국여지승람' 이래 449년 만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게 다일까?

알방에오름에서 본 산철쭉(사진 왼쪽), 한라산순례기.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5819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