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문화광장] 현실은 드라마보다 강하다 4·3둥이 어느 여인의 일생

[김정호의 문화광장] 현실은 드라마보다 강하다 4·3둥이 어느 여인의 일생
  • 입력 : 2023. 04.11(화) 00:00  수정 : 2023. 04. 11(화) 09:3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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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현 여인은 4·3 의 광풍 속에 태어났으나 광풍이 사라지기까지 출생신고도 못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돌아온 젊은이였는데 자의에서인지 타의에서인지 남동생과 함께 산으로 올라갔고 생사 확인도 못 하다가 결국 죽은 것으로 정리한다. 현 여인의 어머니는 폭도의 아내와 자식이라는 두려움에 출생신고를 못 하다가 나중에 남편의 3형제 중 살아남은 1인의 호적에 현 여인을 올리고 현 여인의 양육은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자신은 재가한다. 현 여인의 외할머니도 해방 후 일본에서 돌아왔는데, 4·3의 혼란 속에서 주변 누군가의 신고로 남편을 잃고 집은 불태워진다. 일본에서 가져온 고운 옷감 등 세간살이는 길거리에 내팽개쳐지고 주변에서 몰려와서 가져가 버렸다고 현 여인 어머니의 막냇동생은 기억한다. 막냇동생은 평생 제주에 살면서 자신들을 신고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길거리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현 여인은 외할머니댁에서 자신과 나이 차이가 10살 미만인 막내 이모와 함께 자란다. 자연스럽게 높은 수준의 교육도 받지 못하고 그렇게 결혼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인구 17만여 명에서 해방 후 10만여 명이 제주도로 돌아왔다고 하니, 자연히 식량, 주거, 빈부격차 등 지역 내 갈등의 요인들은 증폭됐다고 여겨진다. 현재 현 여인은 4·3 희생자 유족으로 배상받으려 하지 않는다. 일평생 4·3에서 파생된 삶을 살아왔으나 희생자의 유족임을 증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씨 집안의 살아남은 아버지 형제의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가 다시 생모의 호적으로 옮겼고, 생모는 4·3 당시에 혼인신고를 안 한 상황이기에 희생자의 배우자임을 증명하지 못하고 주변에서 증언이나 유전자 검사를 적극적으로 나서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 여인에게 그런 모든 법적인 문제를 해결할 변호사를 살 경제적 여유나 시간이 없고 배움이 없다. 그렇게 현 여인은 자신의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이번 생을 가져가려 한다. 현실은 허구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마치 드라마 속 출생의 비밀처럼 그동안 관심도 두지 않고 묻지도 않았던 이야기를 듣고 이런 기구한 운명이 있는가. 4·3이 대를 이어서 인간의 삶에 미치고 있음에 여기에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어릴 적 할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주와 일본, 원자폭탄, 4·3, 한국전쟁 등 이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이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온전히 살아온 것이 아니라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아리랑'과 같은 대하소설 속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단지 도세가 약하고 이를 문장으로 풀어쓸 인재가 없었거나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물론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제주도를 방문한 적이 없는 재일 조선인 작가 김석범의 '화산도'는 있다. 다시 '4·3을 말한다' 시즌 2가 필요하다. 이번에는 4·3이 후대의 삶에 미친 영향을 구술사로 정리해 4·3 아카이브를 풍요롭게 해야 할 것 같다.<김정호 경희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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