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 '구좌·안덕'과 '마대기빌레'에 깃든 역사를 찾아서

[한라칼럼] '구좌·안덕'과 '마대기빌레'에 깃든 역사를 찾아서
  • 입력 : 2023. 05.02(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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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한 이는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H. 카이다. 천년왕국 탐라국은 고려와 몽고 시대를 거치며 1105년 탐라군으로, 1214년 제주군으로, 1295년 제주목으로, 1300년에는 대촌(제주시)과 더불어 동도와 서도의 중심 마을인 15현으로 이어졌다.

조선에 와서는 한양과 3읍이 근간이 돼 지명에 좌우, 동서, 신구 등이 깃들며 마을들이 이어졌다. 1609년(광해1) 판관 김치 시절 제주목과 정의현은 좌면·우면·중면, 대정현은 좌면·우면으로 분면돼 이어졌다. 그리고 1798년 제주목 우면의 동쪽은 신우면(애월읍), 서쪽은 구우면(한림읍·한경면)으로, 제주목 좌면은 1874년이 돼 신좌면(조천)과 구좌면으로 나눠졌다. 특히 일제는 수백 년 이어져 온 좌·중·우 중심의 면 이름을, 면 소재지가 있는 마을의 이름으로 바꾸도록 1935년 강제했다. 그리하여 신우면은 애월면으로, 구우면은 한림면으로, 신좌면은 조천면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서귀면, 남원면, 표선면, 중문면 등도 이 시기에 등장한다. 반면, 구좌면은 면 이름이 그대로 남아 이어지고 있다. 당시 구좌면의 면 소재지는 평대리에 있었다. 구좌면만이 유구한 옛 명칭을 사용하게 된 뒤에는 평대리보다 고촌이자 대촌인 김녕·하도·세화리 등의 저항이 있었기 때문이라 전한다.

면 이름의 마을이 없는 안덕면은 어떤가. 넓은 대정현 우면을 1874년 분면해 생긴 곳이 대정현의 중면으로, 지금의 안덕면 지역이다. 당시 서광리에 있던 면사무소가 감산리를 거쳐 화순리로 이전돼 1935년 면 이름 개정 시 화순면으로 신청했으나, 전라도에도 같은 지명인 화순이 있어 반려됐다. 일제가 다시 신청하도록 하니, 안덕계곡에서 따온 안덕면으로 재신청해 오늘로 이어진 것이다. 이렇듯 면 이름에도 일제의 정체성 흔들기에 대한 저의가 깃들어 있음이다.

반면 제주의 역사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마대기빌레'라는 지명도 있다. 10소장이 펼쳐진 한라산 품 안에서 자란 수많은 말들은 한양을 비롯한 국내외로 실려 가기도 했다. 제주마가 떠난 포구로는 조천포·화북포·애월포, 당포, 명월포 등이다. 특히 지금의 한림읍 지경인 제6소장에서 몰아온 말들은 명월진성 밖에 위치한 마대기빌레에서 순풍이 불 때까지 대기시켰다가 명월포(옹포)를 통해 실려 나가곤 했다. 너럭바위와 곶자왈 지대인 마대기빌레는 지금, 농경지와 주택지 등으로 바뀌어 있다.

그 옛날 마대기빌레 일대는 바위투성이 지대를 농경지로 개척하려 애쓴 선인들이 흘린 땀방울의 현장이다. 척박한 빌레를 일궈 밭을 경작한 선인들의 억척스러움과 고단한 일상이 묻어나던 삶의 현장이다. 깊게 박힌 돌멩이를 뽑아내어 황무지를 일구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선인들의 검질긴 생명력을 생각하게 하는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문영택 (사)질토래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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