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쓸쓸한 스승

[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쓸쓸한 스승
  • 입력 : 2023. 05.17(수)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라일보] 스승의 날을 넘기면서, 학교에서 겪은 마지막 스승의 날을 떠올린다. '쓸쓸함'이 사람을 수식할 수 있음은 박완서의 소설,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 배웠다. 그 쓸쓸함은, 정작 자신은 못 느끼고 있지만, 타인인 아내가 '그'에게 갖는 '연민의 정'이었던 것으로 이해했다. 엊그제 스승의 날도 그때와 같았다면 대부분의 학교가 조용하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평범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선생님들은, 세상 관심이 적었어도 '학생은 있으나 제자는 없고, 교사는 있으나 스승은 없다'는 말이 없음에 안도했을 것이다.

예전의 스승의 날들이 생각난다. 이날은 학생과 선생님 사이에 이해와 소통이 이뤄지는 축제일이었다. 학생들은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미안함, 고마움, 사랑 혹은 존경을 편지에 담아 선생님께 전했다. 이때는 주로 꽃이나 과자가 함께했다. 선생님들은 글을 읽고 아이들의 깊은 사려에 감동하고,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깜짝파티를 벌여 놓고 '스승의 은혜'를 다 함께 열창하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그게 고맙고 미안했다. 그래서 반성도 하고, 최선을 다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2016년, 그 스승의 날의 풍경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전체 조회로 간단한 기념식이 거행됐고, 선생님들의 가슴에는 학생회가 준비한 카네이션이 한 송이씩 달렸다. 어머니회가 대표로 준비한 꽃다발이 여러 교무실들에 놓였다. 그러나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드리는 편지는 거의 없었다. 학생이 선생님에게 개인적으로는 꽃 한 송이도 드릴 수 없게 법이 금지했다. 아이들의 생각에도, 편지만 드리기는 미안했던 것 같다. 묘한 무미건조함에, 아쉬워하는 학생도 있었고, 오히려 잘됐다고 수긍하는 선생님도 많았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은 학교에서 참 낯설다. 그 법을 학교에 적용한 바탕에는, 꽃 한 송이나 과자 한 봉지를 통해, 학생의 생활지도나 성적 처리에 부정이 개입할 수 있다는 예단이 있었을 거다. 그건 선생님들을 모르고서 한 판단이다. 선생님들은, 금품이야만 뇌물이 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 선생님들은, 수업이나 모습이 멋있다며 건네는 학생들의 인사 한마디에 행복하고, 진정을 담은 글에 감동할 줄 안다. 선생님들은 사랑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물질보다 마음을 헤아리는 데에 익숙하다. 이것은 학생들도 잘 알고 있다. 부정이 우려되면, 이런 인사나 쪽지도 법으로 금지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 스승의 날의 세태 말고도 선생님들에 대해 필자가 느끼는 쓸쓸함은 무척 크다. '스승의 쓸쓸함'은, 교육 밖의 세상이 학교와 교사에 대하여 가지는 무지와 무시, 무례가 부추기고 있으며, 이는 국가적 사회적으로 큰 문제라고 본다. 필자의 이 생각이 틀렸기를, 아니면 이제라도 세상이 스승 친화적으로 바뀌기를 간절히 바란다. 스승이 당당해야만 교육이 제대로 살고 제자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종실 전 제주외국어고등학교 교장>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1 개)
이         름 이   메   일
9219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