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현성 이설 600주년/ 과거와 미래를 잇다] (4)성읍민속마을 주민의 ‘불편한 현실’

[정의현성 이설 600주년/ 과거와 미래를 잇다] (4)성읍민속마을 주민의 ‘불편한 현실’
"200년 전, 조선시대 사람처럼 살라고?"… 성난 마을 주민들
  • 입력 : 2023. 06.20(화) 00:00
  • 백금탁 기자 haru@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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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개선 요구 '맴맴'… 문화재청 항의방문 계획
초가 팔고 천미천 공원부지 컨테이너 생활 수년째
80대 할머니 "부엌 없고 물도 수돗가서 길어다 먹어"

[한라일보] 600년 전 이설한 정의현성을 비롯해 수백 년이 넘는 팽나무와 느티나무 군락지 등 여러 문화재를 품은 성읍민속마을 주민들의 삶은 문화재보호법 규제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최첨단 디지털시대에 살면서도 길게는 200년 전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낡고 좁은 초가에서의 생활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며 고향 마을을 등지게 하고 있다. 무엇 하나 짓거나 고치려 해도 복잡하고 까다로운 현상변경 절차 때문에 허가를 받는 것조차 포기하고 불법을 자행해야 하는 현실의 연속이다. 실제 거주하는 정의현성 주변의 주민들의 불편한 삶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성읍민속마을에는 초가를 수리할 수 있는 초가장이 있지만 행정이 일부 특정업체에게 복원을 맡기면서 제주의 전통초가가 아닌 다른 지역의 초가로 고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어 문제다. 백금탁기자



▶"주거환경 열악… 편법·불법 건축물 양산"="아무리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목적도 중요하지만 문화재보다는 사람이 우선 아닐까요. 초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라는 요구는 요즘처럼 최첨단시대에 우리 성읍마을 주민들에게는 좁은 초가에서 조선시대 사람처럼 살라는 말로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지난 6월 12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민속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의 주된 목소리다. 문화재 보호라는 굴레 속에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에 따른 불만과 함께 최소한의 문화적·시대적 편의와 혜택을 받고 싶다는 희망이 간절하다.

김철홍 성읍1리장은 "행정은 마을 주민들에게 문화재 보호라는 명분 아래 200년 전의 삶을 살게 요구하고 있다"며 "최소한의 삶의 편의를 갖춰야 주민들이 살면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최우선 선결과제가 정주여건 개선"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초가와 향토음식, 그리고 유적을 가미한 관광자원을 활용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이장은 "지금까지 문화재 마을로 지정된 이래 수없이 제주도, 도의회, 서귀포시에 주민 편의를 위한 시설 개선에 따른 현상변경 절차 간소화를 요구했으나 사실상 변한 게 하나 없다"며 "아무리 제주 안에서 떠들어봐야 개선의 여지가 없어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문화재청에 직접 찾아가서 집단 항의에 나설 계획도 세웠다"고 했다.

제주도가 매입한 초가 활용에 대해 그는 "사람이 살지 않으면 곰팡이가 피고 좀이 슬 수밖에 없다. 그리고 5~7년 후에는 복원비로 평당(3.3㎡) 1000만원 이상 소요되는데 이런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느니, 제대로 정비해서 임대해 활용하는 게 낫다"고 제안했다. 현재 일부 초가의 경우, 공방 등으로 임대를 하고 있으나 영업 부문에서 사업을 하는데 한계가 있는데, 제조업 허가를 줘서 열심히 영업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하는 것이 행정의 역할이라고 제언했다.

그는 지정한 고택들과 제주도가 매입한 초가에 대해서는 원형 보존을 원칙으로 그 모델을 제시하고, 나머지 초가에 대해서는 실제 주민들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편의시설과 영업시설을 할 수 있도록 현상변경 허가에 따른 절차 편의성과 완화를 요구했다.



▶"매입 초가 관리 엉망… 일부 주민은 컨테이너 생활"=김명호 표선면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은 "초가에서의 삶이 불편하다 보니 주민들은 부엌이며 화장실, 샤워실, 보일러실, 창고 등 현상변경 심의(33㎡, 10평 수준)를 받지 않은 범위(16.5㎡. 5평 내외)에서 불법 증·개축을 하고 살고 있다"며 "또한 국가와 지자체에서의 정의현성 내·외의 초가 관리도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성읍민속마을에 초가를 짓고 고칠 수 있는 초가장이 마을에 여럿 있지만 일부 특정업체에 복원 관련 일을 맡기면서 제주의 전통초가가 아닌 다른 지역의 초가로 고쳐지는 일도 더러 있다"고 꼬집었다. 현장에서 서로 마주한 초가의 처마 모양을 비교하면서 "제주 전통초가는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벽체와 처마가 붙어 있고, 다른 지역의 처마는 공기가 통할 수 있게 벽체와 띄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제주도가 매입한 초가 30동에 대한 관리가 사람이 살지 않으면서 매년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며 재정 낭비를 하고 있다"며 "게다가 도에 초가를 팔고 그 돈으로 다른 대체 건물을 살 수 없어 (천미천)하천변 공터에 컨테이너를 놓고 생활하는 곳도 현재 6동으로 수십 년째 그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전 청년회장을 지낸 김관석 성읍민속마을보존회 감사는 "각종 불법 건축물로 인해 원형 초가의 모습을 잃고 있으며, 불법 건축물이 아닌 법 적용에서 제외된 하우스시설까지 혼재돼 있어 체계적인 초가 복원 모델 제시가 필요하다"며 "행정에서는 지난 1월과 5월에 두 차례에 걸쳐 주민들에게 가건물에 대한 철거를 요구하고 있는데, 실제 거주자들이 매일 쓰는 화장실과 샤워실, 보일러실 등을 당장 뜯어낸다면 어떻게 살지가 막막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또한 그는 "가건물 철거에 대해 2019년 용역이 이뤄졌고 2020년 주민설명회에 이어 지난해 설명회 겸 보고형식으로 주민의 자발적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며 "일방통행식 행정 처리로 피해는 문화재 마을에 사는 주민뿐"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그는 "원형 복원한 초가의 방이 워낙 좁다 보니 방의 길이가 190㎝밖에 되지 않는다"며 "현대인들의 신체가 커지고 있는데 이런 좁은 데서 잠조차도 잘 수 없는 구조가 대부분으로 민박으로 활용하기에도 역부족"이라고 했다.

성 밖 초가에 살고 있는 송두춘(84) 할머니는 "제주 4·3 당시에 지은 초가에서 살고 있는데 부엌도 없고 물도 수돗가에서 길어다 먹고 있다"며 "화장실도 집 밖에 따로 있다 보니 나이가 들어 영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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