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택의 한라칼럼] '전농로'에서 만나는 역사문화

[문영택의 한라칼럼] '전농로'에서 만나는 역사문화
  • 입력 : 2023. 07.04(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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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의녀 홍윤애의 무덤이 있었다 해 '홍랑로'로도 알려진 전농로를 다시 찾았다.(옛 교육감 관사 맞은편에 표지석 있음) 홍랑로는 지고지순한 순애보가 깃든 이름이다. '옥 같던 그대 모습 묻힌 지 몇 해던가 머나먼 황천길 누굴 의지해 돌아갔을까 천고에 남을 그대 이름…' 조정철이 제주 유배 당시 사랑한 홍윤애에게 바친 조시(弔詩)에서 몇 구절 인용했다. 제주에서 27년의 유배생활을 한 조정철이 1811년 제주목사로 자원·부임해 홍랑이 묻힌 이곳을 찾아 무덤을 단장하고 위의 시를 지어 바쳤던 것이다. 홍윤애의 묘는 전농로 주변에 200년 넘게 있었다. 그러다 1940년 제주농림학교가 옛 귤림서원 터에서 이곳으로 옮김에 따라 홍윤애 묘는 유수암리(산39번지)로 이장돼야 했다.

이제 전농로를 얘기할 차례다. 이곳에 제주 농업교육의 중심에 있던 학교가 있었다고 해 '전농(典農)로'라는 도로명이 지어졌다고 한다. 이곳은 지금, 새로 들어선 '제주고의 옛 터와 사은비' 등 5개의 신입 비가 현무암 거석과 벚나무 가로수와 조화를 이루며 명품거리로 진화하고 있다. 비문에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제가 5년제 학제를 4년제로 단축해 학교를 병영화 한 기록도, 일제 패망 후인 1945년 9월 28일 일본군 항복조인식이 거행된 역사적 장소라는 글도, 4·3 때에는 9연대 등이 주둔했다는 글도 있었다. 무자비한 토벌을 벌이는 박진경 대령(연대장)에게 문상길·손선호 등이 총을 겨는 곳도 이곳 어디일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해군병원과 한국보육원이 들어서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한국보육원(창필재단)에서 사은(謝恩)비를 이곳에 세운 점이다. 전쟁고아 1059명이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수송기 16대로 입도해 5년 동안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제주도민과 학교 측에 감사드린다는 내용을 사은비에 담은 것이다. 당시의 도지사는 김충희, 교장은 최광식, 보육원 원장은 황온순이다.

제주융합과학연구원 등 여러 교육기관이 들어선 이곳은 또한 벚나무 거리로도 유명하다. 특히 3월이면 벚꽃 세상이 되는 왕벚꽃축제가 열린다. 전농로 지명의 근원인 제주농고의 전신은 1907년 오현단 부근에서 개교한 사립의신학교이다. 이렇듯 제주의 다양한 역사문화를 품고 있는 이 거리에는 또한 풀어야 할 특이한 역사문화도 숨어 있다. 바로 이곳의 행정명이다.

전농로는 삼도1동에 위치하고 있다. 반면 원도심의 중심인'목관아'와 관덕정은 삼도2동이다. 일도1동과 이도1동이 원도심에 위치한 반면 삼도1동은 원도심 밖에 위치하고 있다. 묘한 행정구역 명칭이다. 원도심의 옛 지명들인 객사골, 한짓골, 이앗골, 병뒷골, 향청골 등은 원도심 안에 있다. 그러나 행정명은 삼도1동이 아닌 삼도2동이다. 이참에 원도심 밖에 위치한 삼도1동을 삼도2동으로, 원도심 안의 삼도2동을 삼도1동으로 명칭 변경해 역사문화 깃든 삼도동으로 가꾸어 가는 것은 어떨까? <문영택 (사)질토래비 이사장·귤림서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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