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국내 1호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제주녹지국제병원과 제주도가 벌인 법적 다툼이 4년여 만에 모두 마무리됐다. 영리병원 운영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녹지제주)는 내국인 진료를 금지한 제주도의 처분이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확정된 지 2주 만에 남아 있던 마지막 소송인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처분 취소 소송을 취하한 것으로 확인됐다. 내국인 진료가 막힌 이상 남은 소송에서 이겨도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녹지제주는 지난 12일 법원에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취소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 대한 소송 취하서를 제출했다. 소송 취하서는 지난 21일 제주도에 송부됐으며, 앞으로 제주도는 2주 이내에 소 취하에 동의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법원에 이미 제출된 소송은 원고가 도중에 취하해도 피고가 소 취하에 동의하거나 2주 이내에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아야 최종적으로 없던 일이 된다.
도 관계자는 "우리가 녹지제주의 소송 취하에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번 소송은 사실상 끝났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소송은 제주도가 지난해 6월 녹지제주의 영리병원 개설 허가를 다시 취소한 것에 대해 적법성을 가리는 다툼으로, 녹지제주와 제주도 사이에 벌어진 세번째 법정 공방이다.
앞서 녹지제주는 제주도가 지난 2019년 4월 기한 내에 병원을 개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하자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 판결로 영리병원 불씨가 되살아나는 듯했지만, 제주도는 녹지제주가 소송을 진행하던 중 병원 건물과 토지를 국내법인에 모두 매각해 의료기관 개설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그해 6월 다시 허가를 취소했다. 제주특별법과 조례에 따라 제주에서 영리병원을 설립하려는 외국법인은 병원 지분을 50% 이상 확보해야 한다.
2차 허가 취소 처분을 놓고 벌인 세번째 법적 다툼에선 제주도가 판정승했다. 지난 5월30일 1심은 녹지국제병원 의료 장비 등이 전부 멸실(경제적 효용이 전부 상실한 상태)돼 병원 개설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제주도의 손을 들어줬다. 녹지제주는 이런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 6월21일 즉각 항소했지만, 21일 만에 소송을 중도 포기하며 둘 사이 벌어진 지리한 법적 다툼이 4년 만에 모두 마무리됐다.
녹지제주의 소송 취하는 두번째 법적 다툼 격인 '내국인 진료 금지 소송'과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법원은 지난 6월29일 제주도가 내국인 진료 금지 조건으로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한 '조건부 허가'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 확정 판결로 녹지제주가 영리병원을 다시 추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도 사라졌다.
녹지제주는 병원 건물과 토지를 전부 매각했음에도 그동안 영리병원 재추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녹지제주는 지난해 2월 제주도에 보낸 공문에서 "개설 허가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것은 제주도 때문"이라며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이 유효한 상황이지만 제주도가 당초 약속과 법률에서 정한대로 외국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한다면 (재)개원을 준비하고 향후 운영계획을 제출하겠다"고 했었다.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면 영리병원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또 녹지제주는 병원 건물과 토지 매각이 재정난을 일시 타개하기 위한 '잠정적 조치'였다며 병원 개설 기준을 다시 충족하기 위해 이미 판 지분을 되살 수 있다는 뜻을 시사했다. 두번째 개설 허가 취소를 앞두고 열린 청문에서도 녹지제주는 이런 주장을 되풀이했다.
영리병원으로 둘러싼 법정공방이 마무리됐지만 녹지제주가 투자금을 회수하려 추가 소송에 뛰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녹지제주는 이미 "제주도의 허가 취소는 한·중 자유무역협정의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FET)'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를 할 수 있는 사유에 해당한다"고 ISD 제소 가능성을 언급했었다.
한편 녹지제주는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 내 지하 1층, 지상 3층, 전체면적 1만7679㎡ 규모의 녹지국제병원을 지어 2017년 8월 제주도에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신청을 했으며 제주도는 그해 12월 5일 녹지제주에 내국인을 제외하고 외국인 의료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병원을 운영하도록 한 조건부 허가를 내줬다.
그러나 녹지제주 측은 내국인 진료 제한은 진료 거부에 속해 의료법 위반 논란 등이 있다며 3개월이 지나도록 개원하지 않았고, 제주도는 이듬해 4월 청문 절차를 거쳐 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