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한 그루 주목(朱木)을 심던 날

[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한 그루 주목(朱木)을 심던 날
  • 입력 : 2023. 07.26(수)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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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아마도 여름을 가장 반길 세대는 청년 세대들이다.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이거나 휴가를 얻게 된 직장인들까지 젊은 세대들이라면 여름은 그 세대들에게 가장 어울릴 만한 계절이다. 그런데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여름은 가난한 이들의 계절이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천년쯤 지난 것처럼 지금은 계절에 대응하는 자세며 인식도 변하고 있다. 세상 변하지 않을 게 있으랴만 살아가는 길에서 바뀌는 계절을 맞이하면서도 한결같은 무엇이 있다면 좋겠다.

한 달이 넘도록 장마가 이어지면서 집중호우, 폭우로 그 피해가 가늠하기 어려운데 특히 인명 피해는 생각할수록 답답하다. 누구를 탓하거나 어떤 정책이며 대책의 시비(是非)를 따질 힘도 없다. 우리나라 수준이 딱 이 정도일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울분이 치밀 때면 정치권을 향해 욕이라도 한 바가지 쏟아내고 싶지만 이마저도 얼마나 무기력한 일인가. 이제 여름 휴가철인데 재해 후유증이 그대로이고 폭염(暴炎)과 태풍도 남아있다. 우리는 벌써 기진맥진한 모습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래전 강원도 정선 두위봉에서 주목(朱木)을 만나 그 나무의 자태에 매료된 적이 있다. 고향으로 내려와서 몇 번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그때마다 주목을 구해 마당 서쪽에 심어두고 마치 신념이 자라는 것처럼 홀로 즐거워하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라도 그 나무처럼 꿋꿋하게 살아보겠다는 다짐으로 내게는 상징이 됐다. 하지만 이사를 할 때마다 그냥 두고 올 수밖에 없었는데, 마치 신념이 무뎌지는 것 같아서 몹시 아쉬웠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지조마저 흐려지는 것처럼.

생각해 보면 신념이라고 하는 게 자칫 맹목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마치 주술적인 부적처럼 의식을 바루지 못하고 삶의 방향마저 기울어지게 한다. 다행히 집안에 텔레비전이 없어 24시간 이어지는 뉴스에 귀를 기울일 일이 없지만 길을 가다가도 듣고 보게 되는 세상의 모습과 이야기들은 이쪽이나 저쪽 어떤 목소리에도 솔깃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끔 아나키스트의 삶을 그려보곤 했는데, 이런 이유에서인지 저들이 말하는 대승(大乘)은 도대체 누구와 함께인지 알 수가 없다.

손녀와 손자를 자주 생각하게 되는 나이를 먹고 말았다. 비록 삶이 가지런하지 못해 이곳저곳을 헤매다녔다고 해서 머무는 곳마다 신념을 대신한다며 주목을 그렇게 세워둘 일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새롭게 주목을 마음 깊은 곳에 한 그루 심었다. 다함이 없는 마음 안에는 무엇이든 쌓아두어도 넘침이 없다. 언제나 청춘인 것처럼 잎이 늘 갈맷빛인 주목을 어루만지는 마음으로 살아왔어도 좋았다. 세상 어느 곳보다 신념이 튼튼하게 자랄 곳은 마음 안보다 더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 계절이며 시대를 버거워할 게 아니라 기꺼이 걸어가 보기 위하여.<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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