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식의 월요논단] 탐라 칠성대 유적, 기대와 전망

[박찬식의 월요논단] 탐라 칠성대 유적, 기대와 전망
  • 입력 : 2023. 08.21(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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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최근 탐라 때 칠성대로 추정되는 유적이 드러나서 화제다. 500년 전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칠성도(대)는 탐라 때 삼성이 북두칠성 모양을 본떠서 돌로 쌓은 대를 말한다"는 기록이 적혀있다. 1712년 제주판관으로 부임한 남구명의 한시에는 "광양 벌판에서 솟아난 삼을나가 하늘의 별과 한라산에 제사를 지낸 제단"이라고 했다. 1737년 제주목사 김정은 무너진 성안의 칠성대를 수축하면서, "옛 도읍의 유적이 황량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무너졌다가 다시 수축된 칠성대는 일제강점기까지 잔존했다. 1926년 제주민들이 칠성단에 모여서 순종의 승하 망곡식을 치렀다는 동아일보·매일신보 기사와 사진이 이를 증명한다. 1935년 제주를 다녀간 독립운동가이자 역사·언어학자인 권덕규도 기행문에 하늘과 북두칠성에 제사 지내던 제주성안의 칠성도를 명기했다.

이렇듯 칠성대는 장구한 세월을 거쳐 제주사람들의 시선과 기억에 남아 있던 탐라 역사의 처소였다. 하늘신인 한라산과 천상의 별을 떠받들어 성주(별의 임금)와 왕자(천왕의 아들인 군주)가 제대를 쌓고 이곳에서 제천의식을 지내며 상호 결속을 다짐하던 탐라 유적인 것이다.

2018년 탐라의 숨결이 서린 한짓골 중심부 유적에서 두 겹의 원형 유구와 팔각형 유구가 발굴됐다. 주변에는 제기로 보이는 유물과 1000점이 넘는 동물 뼈가 출토된 바 있다. 이곳은 향토사학자 홍정표가 지목했던 천추성 칠성대 자리라고 추정된다. 일제 때 작성된 지적도에도 이곳은 원형으로 이어진 국유지로 표기돼 있다. 주변에 제터길, 두목(斗目)골 등의 지명이 남아 있어 북두칠성 관련 제례 유적임이 짐작된다. 우리나라 고대국가 제사유적 중 제단은 거의 다중환호 형태임에 비춰보면 제사유적에 더욱 가까워 보인다.

현재 한짓골 유적은 출토 유물 보존처리를 거쳐 매립해 공영주차장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이 유적이 탐라 때 제천의식을 치른 칠성대 제단으로 판명된다면 최초의 성안 현존 탐라유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용담동 향교 뒤편에서 탐라의 제사유적이 발굴된 바 있지만 제단의 흔적은 없고 성안을 벗어난 유적이다.

이 유적을 칠성대로 추정한 이는 강문규 선생이다. 그는 칠성대와 탐라의 별 문화에 오랫동안 주목해 온 결실로서 단행본 '일곱 개의 별과 달을 품은 탐라왕국'을 출간한 바 있다. 지난달 막을 연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탐라 특별전에서도 탐라도성의 칠성대를 조명한 코너가 관람객의 이목을 끌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 고대 제사유적 중 환호제단·팔각유구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전문 연구자의 검증을 받는다면 탐라 도성의 신전인 칠성대가 복원돼 부활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관련 고고역사 연구자 및 문화재위원회 등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정밀 고증하고 학술정보를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또한 국책사업으로 추진 예정인 탐라역사문화권 사업과 연계시켜서 국가와 지방정부가 전향적인 정책기획사업으로 적극 추진하기를 기대해 본다.<박찬식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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