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제주지역에서 11년 만에 부활하는 음주운전 신고포상제를 놓고 경찰 내부가 들끓고 있다. 경찰이 제주도자치경찰위원회에 신고 폭주에 따른 보완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제도 시행을 유예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자치경찰위가 '9월 강행'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일선 경찰관들은 당장 다음달부터 제도가 시행되면 음주운전 의심 차량을 쫓느라 다른 강력 범죄 사건에 대응하지 못하는 '치안 공백'이 생긴다며 제도 강행에 반발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로 했다.
▶11년 만에 부활=음주운전 신고포상제는 음주운전 차량을 발견한 시민이 경찰에 신고해 검거에 성공하면 금전적 보상을 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제주에서 2012년 11월말 전국에서 처음 도입돼 시행됐지만 신고 폭주로 포상금 재원이 금방 바닥나고, 경찰 업무가 가중되면서 6개월 만에 중단됐다.
음주운전 신고포상제는 지난해 7월 7명의 사상자를 낸 애월해안도로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계기로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자치경찰위는 음주운전 폐해가 심각하다고 보고 이 제도를 재도입하기로 했다. 자치경찰위는 포상금 지급 근거를 신설한 조례를 만들어 올해 4월 도의회 심사를 통과한데 이어, 2개월 뒤 제주경찰청에 제도를 시행하라고 '지휘'했다.
2020년 경찰법 전면 개정으로 그동안 국가경찰이 수행하던 사무 중 주민 생활과 밀접한 교통안전 업무는 자치사무로 분류돼 합의제 행정기구인 자치경찰위의 지휘를 받는다.
▶경찰 반발 격화 공동성명 예고=음주운전 적발 방식은 주로 특정 날, 특정 지역에서 경찰이 길목을 막아 음주측정을 하는 '길목 단속'과 시민 신고를 받고 출동해 검거하는 두가지 형태로 나뉜다.
경찰은 이중 음주운전 의심 신고에 대해선 출동 최고 단계인 '코드제로' 사건으로 분류해 용의차량을 쫓고 있다. 음주운전은 자리를 옮겨가며 범죄를 저지르는 '이동 범죄'에 해당해 추가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음주운전 신고포상제가 도입되면 의심 신고가 늘어나 '코드제로' 출동 상황도 덩달아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인력과 장비가 열악한 파출소가 의심 신고에 대응할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코드 제로 지령이 떨어지면 관할 지역 파출소는 무조건 출동해야는데 한경, 조천, 함덕, 안덕, 표선, 외도 등 상당수가 순찰차 1대만 운용하고 있다.
경찰은 음주운전 의심 신고 사건 한 건을 처리하는데 통상 3~4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초동 조치 최일선에 있는 파출소 경찰관들이 그 시간 동안 다른 강력범죄에 대처할 수 없는 치안 공백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또 지난 1년간 음주운전 오인 신고 비율이 84%에 달해 경찰력 낭비가 심각했다는 문제도 있다.
경찰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치경찰위에 시내권 음주운전 의심 신고는 자치경찰이 담당하고, 시 외곽 지역 신고는 파출소가 초동 조치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한편, 보완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제도 시행을 유보하자고 요구했지만 거절 당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노조 격으로, 경감 이하 경찰관으로 구성된 동부·서부·서귀포·경찰청 직장협의회가 잇달아 자치경찰위원장을 만나 요구사항을 전달했지만 9월 강행 방침을 꺾지 못했다.
급기야 경찰은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로 했다.
양윤석 제주경찰청 직장협의회장(경위)은 "문제가 불보듯 뻔한 상황에서 제도가 시행되면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라며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보완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유보하자는 뜻인데 왜 자치경찰위가 강행을 고집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각 관서 협의회별 의견을 모아 이번 제도의 문제점을 알리는 공동 성명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상명하복 문화가 강한 조직 특성상 경찰 내부 구성원이 특정 경찰 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제도 시행을 앞두고 양 기관 갈등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반면 자치경찰위는 경찰이 우려하는 문제는 시행 과정에서 충분히 보완할 수 있고, 인력·장비 부족 현안은 경찰 스스로 해결할 일이라며 내달 제도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자치경찰위 관계자는 "자치경찰이 공동 대응하는 방안에 대해선 공감한다"면서도 "단 밤 10시까지 근무하도록 한 자치경찰 근무 체계를 제도 시행 시기에 딱 맞춰 변경하면서까지 공동 대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제도가 널리 알려지면 음주운전이 줄어 신고 건수도 감소할 수 있다"며 "경찰 인력·장비 부족 문제에 대해선 자치경찰위가 개입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경찰이 보완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제도를 강행하는 자치경찰위를 겨냥하고 있지만, 경찰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치경찰위가 지난해 8월 경찰에 조례 마련 과정에서 의견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당시 경찰은 '이견 없음'으로 의견을 제출했다. 이후로도 문제를 제기하고, 의견을 조율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제도 시행을 눈 앞에 두고 두 기관이 갈등해 도민들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편 제도가 시행되면 면허 취소 수준의 음주운전 행위를 목격해 신고한 자는 5만원을, 면허 정지 수준의 음주운전 행위를 발견해 신고한 자는 3만원의 포상금을 차등 지급 받는다. 다만 동일 신고자는 한 해 최대 5차례만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