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순 시민기자의 눈] 조상의 음덕 기리는 '제주 벌초 문화'

[김원순 시민기자의 눈] 조상의 음덕 기리는 '제주 벌초 문화'
1980년 이전까지 소분(掃墳)으로 불러
  • 입력 : 2023. 09.12(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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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후손들은 조상숭배라 하여 대다수가 무덤을 만들었다. 평민들에게 무덤을 만들 수 있게 된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선사시대로 가보면 부족장들 무덤이 지금까지 전국에 분포된 고인돌이라 하겠고, 고구려,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무덤이 형태도 돌무덤에서부터 곽묘(廓墓), 원묘(圓墓), 용묘(龍墓)에 이르기까지 변화해 오는데 왕골, 진골들만이 전유물이었다.

선조의 무덤을 마련하면 풍수에서 명하는 음택지(陰宅地)가 묘자리인 것이다. 살아 있는 자들이 삶터는 양택지(陽宅地)라 했다. 음택인 무덤에는 자연적으로 잡초가 자라게 된다. 후손 된 도리를 다하려면 이 잡초를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벌초(伐草)한다. 성묘(省墓)라 하기도 하지만 제주에서는 1980년 이전만 하여도 벌초나 성묘라 하기보다는 '소분'이라 했다.

소분하는 시기는 음력 8월 1일부터 14일 추석 전날까지라 하지만 대부분 10일까지 마무리한다. 후손들이 멀리 육지부로 떠나갔다 해도 벌초 때는 함께해야 일가로 취급했다. 호미(낫)로 소분하고 걸어서 수십 리 길을 가야 하는 시절에 소분은 1년 중 조상에 대한 가장 큰 행사였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벌초기계가 등장한다. 획기적인 발전이다. 초반에 벌초기계로 소분을 할 때 크고 작은 사고도 많았다. 심지어 손목, 발목이 잘리기도 하고, 공포의 기계지만 이동하기에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장점이 많아서 안전사고 예방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다. 벌초기계가 나오기 전까지 소분이라고 하다가 기계 도입이 되면서 그 명칭도 벌초기계로 불려 소분보다 벌초로 바뀌어졌다.

1990년 이전에 10여 일 걸려 하던 벌초가 3일 이내로 단축되었고, 무덤의 형태도 후손들 관리가 힘들어서 가족공동묘지를 조성한다. 무덤의 형태에서 화장문화로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은 법적으로 묘를 조성하는 데 여러 가지 조건을 부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평장을 만들어 편하지만, 이 또한 조금씩 자연장으로 바뀌어 국가가 일정 기간 관리하다 공원지구로 운영하는 문화가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요즘 제주는 벌초 대목이다. 가족 묘지를 조성하지 못한 집안은 2~3일 벌초를 해야 할 것이고 가족묘를 조성한 집안에서는 몇 시간이면 끝낼 것이다. 벌초기계를 잘 다뤄서 무탈하게 마치기를 기원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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