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10차례 걸쳐 출향해녀 삶·역사적 의의 등 재조명울릉도 일대 탐사, 잔존한 마지막 제주해녀 찾아 기록도일본 오키섬 방문… 일제강점기 제주해녀의 고용 흔적제주도·경북도 등 제주 해녀 역사적 재조명 작업 박차
[한라일보] 제주 해녀들의 무대는 한반도 동해안과 남해안을 지나 러시아,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까지 뻗쳤다. 그 가운데 우리 땅 독도가 있다. 독도 땅을 밟은 제주 해녀의 이야기는 생계를 위한 물질이라는 의미에 더해 독도의 유인화, 궁극적으로는 '독도 수호'의 주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보는 올해 10차례에 걸쳐 해녀들의 출향 당시의 기억과 삶의 이야기, 역사적 의의 등을 재조명했다.
독도 전경. 한라일보DB
▶독도 출향 해녀 '기억의 기록'=독도 출향 물질에 나선 제주 해녀들의 집단 거주는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왕성하게 이뤄졌다. 독도 어장에서의 어로활동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해녀들의 독도 진출은 그보다 앞선 시기인 1930~40년대 일본인에 의해 고용돼 성게 채취 등을 했다고 전해진다. 본보는 항일운동가 또는 제주의 강인한 여성상, 생계를 위한 원정 물질이라는 의미에 더해 여성 노동자로서, 거친 파도를 타고 척박한 섬까지 다다랐던 제주 해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독도 출향 해녀와의 인터뷰를 통해 파악한 독도에서의 생활은 열악함과 힘겨움 그 자체였다. 독도의 유일한 식수원인 '물골' 근처에서 머물며 지냈던 기억,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갈매기알을 삶아 먹었던 기억 등을 채록했다.
또 1950년대 초반 독도 경비 업무를 수행했던 독도의용수비대들에 의해 고용돼 미역을 채취했다는 기록도 확인했다. 특히 독도의용수비대와 제주 해녀의 공생과 끈끈한 연대 관계에 주목했다. 제주 해녀는 독도의용수비대의 독도 '수호' 활동과는 별개의 존재 혹은 조력자로서의 역할로 의미가 인식돼 왔지만, 궁극적으로 이들의 독도 주둔 생활이 독도에 대한 실질적 지배·관리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독도 수호의 '주체'라는 데 주안점을 뒀다.
울릉도 전경.
특히 경상북도 포항과 울릉도 일대를 직접 찾아 출향 물질 당시의 기억과 경험을 공유했다. 그 과정에서 50년 전 출향 물질 당시의 기억을 채록하고, 현재 울릉도에 잔존한 '마지막 제주 해녀'의 이야기도 보도했다.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영토이자 과거 독도에서 불법 어업 활동을 하던 어민들의 출향지인 일본 시마네현의 '오키섬'도 방문했다. 독도 어업활동에 나섰던 제주 해녀들의 일화와 기록을 추적했으며, 이 과정에서 현지 증언을 통해 울릉도 출신 남편과 바다 건너 오키섬으로 넘어와 물질을 이어갔다는 해녀의 이야기를 국내 언론 최초로 확보했다.
다케시마 역사관에 게시된 일본어업인과 고용된 해녀(오른쪽 4명)의 모습.
▶독도 수호 조력 아닌 '주체' 재조명=전문가들은 제주 해녀 물질의 의의를 '독도의 유인화'라고 요약했다. 아무도 살지 않았던 섬에 해녀들이 단체로 모이면서 독도에 숨결을 불어넣게 됐고, 독도의용수비대 등과 함께 여러 행정 업무에도 함께 참여하며 독도 근현대 주민생활사의 일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독도의용수비대와 함께 한국이 독도를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할 수 있도록 해 준 진정한 주체는 제주 해녀라는 사실이 보다 적극적으로 조명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본보뿐 아니라 제주도, 경상북도 등은 독도 출향 제주 해녀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장영미 해녀가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소재 성당 묘지를 찾은 모습.
이를 위해 제주도와 경상북도는 '제주-경북 해양인문 교류 및 섬 생태관광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일환으로 독도와 울릉도 출향 물질의 주역들을 직접 독도와 울릉도로 초청했고, 독도·울릉도 땅을 밟은 해녀들이 물질 당시의 기억을 생생하게 증언하기도 했다. 독도박물관, 독도의용수비대역사기념관,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등 울릉도 내 독도·울릉도의 역사를 기록한 각종 시설에는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가 전시돼 있다.
올해에는 제주도 해녀박물관과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박물관은 공동으로 '제주 해녀, 대한민국 독도를 지켜내다'를 주제로 기획전을 열고 있다. 전시에서는 울릉도와 독도에 출향했던 해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도 영유권 강화 및 독도어장 보호에 기여한 제주 해녀들의 가치와 위대함을 재조명하고 있다.
제주 출신 울릉도 해녀들. 사진 왼쪽부터 김복선, 윤춘자, 김수자 해녀. 독도해녀 특별취재팀
특히 경상북도 울릉군과 독도재단의 후원으로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 세워진 '울릉도 출어부인 기념비'가 지난해 울릉군 울릉도·독도 해양연구기지에 복제되기도 했다. 제주시와 울릉군이 해양산업 교류를 위해 협약한 내용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내 해양생태관 첫 공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제주 해녀, 독도 바다를 일구다'라는 제목으로 제주 해녀의 물질 기록이 새겨져 있었다.
"제주 해녀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작한다. '바다'라는 공동의 부엌에서 바다가 허락한 시간을 존중하며 자연과 공존한 해녀. '저승에서 벌어서 이승에서 쓴다'는 해녀. 제주 해녀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 소중한 인류의 자산이다. 제주 해녀의 독도 출어는 해방 이전부터 시작됐다. 제주 해녀는 독도의용수비대의 요청으로, 독도 경비대의 요청으로, 독도 주민 최종덕의 요청으로 많게는 30~40여 명이 독도에서 미역 채취 작업에 참여했다. 현재도 울릉도에는 제주 해녀 출신 분들이 생존해 계신다. 독도 주민 김신열 씨 또한 제주 해녀 출신이다. 제주 해녀는 독도를 일군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불턱은 해녀를 지켰고, 해녀는 가족을 지켰고, 울릉도는 독도를 지킨 해녀의 대합실이었다." 특별취재팀=이태윤 정치부차장·강다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