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62] 3부 오름-(21)'모슬악' 나란히 있는 두 봉우리 중 낮은 봉우리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62] 3부 오름-(21)'모슬악' 나란히 있는 두 봉우리 중 낮은 봉우리
모슬악과 산방산은 '모수리'와 '덕수리' 관계
  • 입력 : 2023. 12.26(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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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슬포는 모래가 많은 포구에서 온 것이 아닌 모슬악에서 기원

[한라일보]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오름이다. 해발고도 181m로 비교적 낮다. 이 이름은 1530년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 대정현 산천에 모슬악(毛瑟岳)으로 나온다. '대정현 서남쪽 6리에 있다'라 했다. 그런데 1653년 '탐라지'에는 '모슬악(摹瑟岳)'으로 표기했다. 1656년 '동국여지지'에도, '대동지지'에도 모슬악(摹瑟岳)으로 표기했다. 이 문서는 1862년(철종 13년)부터 1866년(고종 3년)까지 김정호가 편찬하였으리라고 여겨지는 문헌이다.

그런가 하면 1454년에 완성됐을 것으로 여겨지는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모슬포악(毛瑟浦岳)', 1702년 '탐라순력도'에 '모슬망(摹瑟望)', 1709년 '탐라지도병서'를 비롯한 '제주삼읍도총지도', '제주삼읍전도' 등에는 '모슬봉(摹瑟烽)'이라 했다. 1911년 '조선지지자료'에는 '모슬봉(摹瑟峰)'으로 나온다.

이처럼 '모슬'의 표기를 毛瑟(모슬), 摹瑟(모슬)의 두 가지로 써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역시 소리 나는 대로 옮겼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 모슬악이라는 지명에 대하여 '본래 이 지역의 포구는 모래가 많아서 모슬개라 불렀는데, 이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명이 널리 유포되어 일반에서는 이렇게 알고 있다. 또한, '모슬포악(毛瑟浦岳), 모슬포악(摹瑟浦岳)이라 하는 지명은 '모슬개' 근처에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유래하며, 모슬악(毛瑟岳), 모슬악(摹瑟岳), 모슬봉(摹瑟峰)은 여기서 개(浦)를 생략한 표기'라고 설명한다.

왼쪽 봉우리는 모슬악, 오른쪽 봉우리는 산방산이다. 두 오름은 높이가 대조적이다.

모슬악에 인접한 모슬포. 사진=김찬수



마을, 시설지명은 자연지명을 원천지명으로 하여 발생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8권 '대정현 조'에 '모슬포(毛瑟浦)는 모슬악(毛瑟岳) 동남쪽에 있다. 송악(松岳) 봉수는 대정현 남쪽 15리에 있다. 서쪽으로 모슬포악(毛瑟浦岳)에 응하고 동쪽으로 굴산(屈山)에 응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 부분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자연지명으로서 이 오름은 모슬악이라는 것이다. 위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동국여지승람' 대정현 산천에 '모슬악(毛瑟岳)', '탐라지', '동국여지지', '대동지지'에 모두 모슬악(摹瑟岳)을 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모슬포(毛瑟浦)는 모슬악(毛瑟岳) 동남쪽에 있다'라는 구절은 모슬악이 주요 지형지물임을 은연중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송악봉수는 모슬포악에 응한다'의 송악봉수는 자연지명이 아니다. 봉수가 설치되었으니 그 봉수를 명명한 명칭이다. 모슬포악이라는 지명도 자연지명이라기보다 모슬포라는 마을 이름 즉, 일종의 행정 지명을 따라 부르는 이름인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1794년의 내용 중 摹瑟浦(모슬포)가 나오고, 1808년에 나온 '만기요람'이라는 책에는 '모슬진성(摹瑟鎭城) 석축은 둘레 315척이며, 지면이 해면으로 들어가서 다리미 모양처럼 되어서 3면은 바다에 잠기고..'라는 내용이 있다. '조선실록' 중종 때(1510) 기사, 숙종 때(1677) 기사에는 모슬포(毛瑟浦)로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摹瑟浦(모슬포), 모슬포(毛瑟浦) 그리고 모슬진성(摹瑟鎭城) 등 역시 자연지명이 아니라 마을과 군사시설을 지칭하는 것이다. 망(望), 봉(烽) 등 군사시설은 물론이고 포(浦)같이 바닷가에 형성된 마을 이름이거나 배가 드나드는 포구의 의미가 들어가는 지명소는 자연지명을 따 작명하는 게 일반적이다. 성산포를 따 성산을 명명한 것이 아니라 성산이 있어서 성산포다. 성천포가 있어서 성천이 된 것이 아니라, 성천이 있어서 성천포란 이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모슬악이라는 자연지명이 먼저 생기고 그 가까운 곳에 형성된 마을 모슬포가 나중에 생겼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모슬'이 제주어 '모살'의 변음인지가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모슬악은 모래로 된 오름이 아니다.



모슬악의 '모'는 '(~에 비해) 작은'의 뜻, 아이누어 기원

모슬악의 '모슬'은 '모+슬'로 구성되어 있다. '슬'은 산방산의 다른 이름 '덕수'의 '수'와 같은 것이다. 즉, 이 '수'는 산봉우리를 의미하는 '수리'에서 왔다. 문자 기록상으로 볼 때 고구려어에서 기원했다. 이후 산을 지시하는 지명에서 修理(수리), 술(述) 혹은 술이(述爾), 수래(水來), 거(車, 수래 거), 주(酒, 술 주), 수(首) 혹은 수을(首乙)로 나타난다. '슬(瑟)'은 이 중에서도 특히 술(述) 혹은 술이(述爾)와 같은 계열이다. 현재의 '슬(瑟)' 이전에는 '모술', '모수리' 같은 형태였을 것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그렇다면 '모'는 무슨 뜻인가? 이 말은 아이누어에선 온 말이다. 대체로 접두어로 쓰여 '작은', '낮은'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손가락을 아시키펫이라고 하는데, 새끼손가락을 '모아시키펫'이라고 한다. 작은 산을 '모리'라고 한다. 이 역시 '모'를 '작은'의 뜻으로 쓰는 예가 된다. 일본어에서는 이 '모리'가 흔히 쓰인다. 앞에서 산방산을 '덕수'라고 풀면서 '덕'은 아이누어로 '큰 산'의 뜻이라고 한 바 있다.

산방굴사의 굴에서 흐르는 물을 '산방덕'의 눈물이라는 전설도 있다. '산방덕'의 '덕'은 큰 산이라는 뜻이다. '사면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큰 산'이 될 것이다. 고대인들이 썼던 지명이 화석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슬'이란 '작은 봉우리' 혹은 '낮은 봉우리', 특히 '(덕수에 비해) 작은 봉우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지역에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있는데 그 하나는 '큰 봉우리'요, 나머지 하나는 '작은 봉우리'라는 것이다. 이 두 지명은 대비지명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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