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세상, 따뜻해지자

[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세상, 따뜻해지자
  • 입력 : 2023. 12.27(수)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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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지척에 영화관이 생겼다. 낮은 땅에 푹 내려앉은 네모난 상자 모양이 맘에 든다. 이 추위에도 따뜻한 커피를 내려 들고 잠깐 걸으면, 문 앞에서 마지막 한 모금을 홀짝 털어 마셔도 좋을 만큼의 거리다. 몇 번 가게 될까, 싶지만 반갑다. 즐겨 가 보려 한다. 이참에 개봉영화 한 편을 거기에서 봤다.

12·12 군사 반란을 모티프로 한 '서울의 봄'이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그날 밤을 영화에서 본다. 극영화인 '서울의 봄'이 온전히 사실일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되짚어 보고 논의할 장을 펼쳐놓는 것만으로도 역할이 크다. 영화가 영화로만 남지 않겠다는 뜻을 읽는다. 간절하게 '서울의 봄'을 고대하고 애썼지만, 순진 몽매하게 오랜 군사 통치에 젖어있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정치군인이 먹고살게 해주었다 믿는다면, 군대를 가장 효율적인 체계로 여긴다면 그 무도함을 잊는 안일한 판단이다. 안타깝게도 군사주의적 상상력은 지금도 답습된다. 영화 끝에 울리는 장엄한 군가가 그토록 슬플지라도. 철저하게 비판적 거리에서 '서울의 봄'을 바라보자. 영화의 대중성과 상품성은 흥행으로 증명될 터지만 이후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우리 몫이므로. 군사통치는 물론, 그 유사한 것에도 권력을 다시 내어주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하므로.

지척에 영화관을 두고 '괴물'은 다른 곳에서 봤다. 너무 적은 수의 관객은 감당할 수 없었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향한 팬심을 차에 태워 좀 멀리 나가야 했다. 기다렸다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로 볼까 던 잠깐의 망설임이 무색할 만치 내게 올해 최고의 영화였다. 보통의 시선으로 영화를 따라가다가는 스스로 함정에 빠진다. 뒤통수 맞는다. 관습적인 사고방식, 학습하고 내면화된 편견은 얼마나 무서운가. 상대에게 고스란히 나를 이해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어떤 일들을 제대로 알고나 있나. 아는 것을 넘어 어디에 공감하나. 얼마나 애써야 부조리한 현실의 한 끄트머리 조금을 바꿀 수 있나. 인물들 각자가 느꼈을 감정들을 더듬어 보자니 참 아프다. 괴물은 누구인가. 여차하면 누구라도, 부지불식간에 괴물이 되리라. 의도된 악의 없이도 누군가를 다치게 하리라. 답답하고 화나고 이상하고 궁금하다가 놀랍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안타깝고 미안한 것 이상의 복잡한 감정이 들끓는다. 거기 오래도록 머문다. 빠져나올 때쯤엔 세상을 선명하게 혹은 좀 달리 볼 수 있을까. 마지막 장면, 꼬질꼬질하고도 맑은 아이들의 얼굴에 들던 햇살과 바람처럼.

다큐 '어른 김장하'도 상영 중이다. 열 손가락 안에 꼽는 이 작품, 동네에도 좀 멀리에도 없다. 소박한 참어른을 보고 감명 깊어 두루 감사했는 데 거꾸로 다시 걸렸다. 극장판이 나오면 다시 보기 할 생각이다.

세밑이다. 대체로 포근한 겨울이더니 폭설에 춥다. 만듦새 좋은 영화라도 보고 온정 나누며 세상, 따뜻해지자. <김문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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