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고통의 반어, 서늘하지만 확고한 다짐

[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고통의 반어, 서늘하지만 확고한 다짐
  • 입력 : 2024. 01.10(수)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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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2023년에서 2024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한복판, 대한민국은 '서울의 봄'이 침체기에 빠진 극장가에 '봄'을 불러왔다.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경성크리처'는 호평과 혹평을 넘나들며 전 세계적인 이슈로 한 해의 끝과 시작을 이어갔다. 또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를 그린 '노량: 죽음의 바다'는 극장가의 열기에 다시 불을 지폈다. '경성크리처'는 역사에 판타지를 녹여 완성한 시리즈물이라는 것에 두 편의 영화와 차별될 수 있으나 모두 '역사물'이라는 것에는 공통된다. 작품의 흥행은 물론 작품성에서 비롯되지만 그 모티브가 역사에 있는 만큼 다시 열광하고 분노하는 관객의 반응이 반가우면서도 서늘하다. 그것은 한편 지금의 사회 역시 삐걱거리며 과오를 반복하고, 부당한 폭력이 만연하며 그로 인한 분노와 증오가 재생산되고 있음을 반추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이들이, 과거의 사건과 인물을 현재로 소환하여 공들이는 이유를 들여다볼 일이다. 2023년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4·3사건을 자신만의 문장으로 담아냈다. 소설은 명확한 스토리보다 이방인에 지나지 않는 개인이 섬의 사연을 듣기 위해 분투하는 고통을 몽환적인 감각으로 전달한다. 섬으로 향하고 섬에 도착해서 중산간에 위치한 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이어지는 고난들이 마치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개인의 조심스럽지만 확고한 다짐처럼 다가왔다.

중앙아시아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중에 '만꾸르뜨'가 있다. 츄안츄안 부족이 전쟁 포로들을 순한 노예로 만들기 위해 낙타 가죽을 머리에 씌워 기억을 말살 시킨 후 만꾸르뜨로 만든 이야기는 소련 붕괴 후 하나의 보통명사가 되기도 했다. 중앙아시아에서 하나의 개념으로 정착된 '만꾸르티즘'은 역사를 은폐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로부터 왔으며 미래는 현재로부터 올 것이다. 묵묵히 성실한 삶을 살고, 경험을 통해 각성하며 현명한 전망을 향한 모험을 주저하지 않았던, 그리고 자유와 사랑을 추구했던 수많은 개인들이 죽음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다시 개인들의 기억으로 공유되어 현재를 각성시킨다.

현재의 '역사물'들이 여전히 먹먹하게 다가온 이유는, 이념과 체제의 견고함, 그 소리 없는 파괴력이 기억의 단절이라는 폭력으로 수많은 만꾸르뜨를 만들어내고 균열을 야기하는 '이데올로기적 억압'이 현재에도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들인 마음들이 현재로부터 올 미래에 작은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해가 바뀌어도 총성은 이어지고 땅은 흔들리지만 모든 틈새에서 많은 개인들이 '왜'라는 질문을 붙잡고 서늘하지만 확고한 다짐을 이어가길 바라는 날들이다. <김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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