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택의 한라칼럼] 조선-제주 4대 표해록

[문영택의 한라칼럼] 조선-제주 4대 표해록
  • 입력 : 2024. 01.16(화)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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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제주바다를 건너다 표류한 최부·김대황·장한철·이방익 등은 망망대해에서 일엽편주에 몸을 의지하며 생사 갈림길을 헤쳐 나온 이들이다. 그리고 조선의 4대 표해록으로 불릴만한 해양문학작품을 남겼다. 말이 통하지 않은 타국에서 필담 교류와 풍속·풍물 등을 통해 만난 새로운 세계도 기록했다.

나주 출신 최부는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으로 제주에 와, 제주의 역사 문화와 자연 경승을 노래한'탐라 시 35수'를 남긴다. 추쇄경차관이란 도망친 노비나 범법자들을 가려내어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는 관리이다. 1488년 부친상을 당한 최부는 고향으로 급히 가다 추자도 인근에서 풍랑을 만난다. 표류 14일 만에 중국 절강성 연안에 표착한 최부 일행 43명은, 왜구로 오인받아 중국 관원의 신문을 받는 등 파란만장한 여정 후 북경을 거쳐 중국 체류 135일 만에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돌아온다.

제주진무(濟州鎭撫:무관) 김대황은 일행 23명과 진상할 말 3마리와 함께 1687년 화북포구를 출발한 후 추자도 부근에서 표류한다. 바닷물을 끓여 만든 수증기를 모은 생수로 생쌀을 씹으며 허기를 달래던 일행들은 죽어가는 말들을 바다에 버리며 베트남에 표착한다. 해적으로 오인도 받지만, 한자로 의사소통이 되어 조선인임을 인정받는다. 목동의 휘파람 소리에 물속에서 나온 물소 등을 타고 달리는 진귀한 모습들을 경험한 김대황 일행은 안남국왕과 중국 온주부의 도움으로 16개월 만에 서귀포항으로 돌아온다.

1770년 장삿배로 제주항을 떠난 장한철(애월 한담 출신) 일행은 폭풍으로 류큐제도 무인도에 표착하여 연명하다, 이듬해 대형 안남상선을 만나 구조된다. 그러나 흑산도 앞바다에서 다시 풍랑을 만나 밤중에 표착한 청산도에 상륙하다, 21명이 죽고 8명만이 살아남는다. 이후 장한철은 한양으로 가 과거에 응시하나 낙방하여 귀향해 보니, 먼저 돌아온 4명은 죽고 2명은 병중이라, 그 감회에 젖어 표해록(2008년 제주도문화재 지정)을 적는다. 장한철은 이후 급제해 대정현감과 강원도 취곡현령을 지낸다.

조정에서 정3품 충장위장 직책을 수행하던 이방익(조천 북촌 출신)은 1796년 제주 연안에서 일행 7명과 표류하다 16일 만에 대만 팽호도에 닿는다. 대만 본토에 송치된 후 중국 절강성·양자강·산동성 등을 거쳐 북경으로 송환된 일행은, 황제의 재가를 받아 표류한지 290여 일만에 압록강을 건너 귀국한다. 이방익을 면담한 정조가 연암 박지원에게 주문해 엮은 서책이 서이방익사(書李邦翼事)이다. 이방익은 "…해도 중 죽을 목숨 천행으로 살아남아 천하대관 고금유적 두루 다 만나보고…" 등의 표해가와 표해록를 남긴다.

살다보면 표류하듯 외딴 곳을 만나기도 한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줄을 놓지 않으면 생명뿐만 아니라 신세계를 경험할 수도 있는 게 세상살이다. 바다를 건너다 경험한 신세계를 글로 남긴 선인들이 있어 삶이 더욱 풍요롭다. <문영택 (사)질토래비 이사장·귤림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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