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혜의 편집국 25시] 서른 언저리의 무직자에게

[강다혜의 편집국 25시] 서른 언저리의 무직자에게
  • 입력 : 2024. 01.25(목) 00:00
  • 강다혜 기자 dh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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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한 기관을 도맡아 취재하는 출입처 제도 아래서 출입기자들은 본래 신분과 별 상관도 없는 조직을 준내부자처럼 오가게 된다. 길면 몇 년씩 기관을 출입하며 사람들과 접촉하다 보면 그들의 속 깊은 이야기도 듣게 된다.

내가 만난 초년 공무원들의 가장 큰 고민은 '미래 설계'와 '행복한 삶'이었다. 힘든 시험 준비 과정을 거친 데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부모님 콧대를 5cm는 높여줬을 거란 뿌듯함까지 느끼며 공직에 입문했단다. 국가라는 어지간하면 망하지 않는 고용주까지 뒀다.

문제는 후회 없는 삶인지에 대한 의문은 점점 커지고, 청사진을 그리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는 점이다. 기관을 출입하다 가까워진 지인(33세, 무직)과 최근 연락이 닿았다. 그는 "철밥통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강력한 안정이 보장됐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내 일도 사랑했지만 이곳에서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공무원을 해도 행복하지 않다면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모든 현실에는 장단점이 있듯이 그는 공무원을 그만둔 채 불안해보이는, 거꾸로 된 인생을 사는 서른 언저리의 청년이었다. 대개 방황을 끝내고 안정적인 삶을 찾아가는 친구들에 비해 역으로 걷는 듯 보인다는 걱정도 그의 시름을 돋운다.

그러나 직장의 모든 명암은 제 몫이다. 중요한 것은 '나'이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가 삶의 중요한 잣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에 적합하지 못해서 튕겨져 나온 불량 톱니바퀴라는 인식도 사라져야 한다.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특이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취재원에서 친구가 된 서른 언저리의 그 청년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떤 노력을 해서 뭔가를 이뤘다면 설령 그게 무너진다 해도 다시 일으키는 건 일도 아닐 거야. 친구야. <강다혜 교육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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