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중국의 풍습에 따르면, 전쟁터나 고기잡이로 나가는 남자들의 무사안녕을 위해 가슴에 당귀를 품게 했다고 한다. 당귀는 '마땅할 당(當)'과 '돌아올 귀(歸)'를 의미하며, 전장에서 반드시 살아 돌아와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할 적에, 제주의 청년들도 가족들이 손수 만들어준 천인침(天人針)을 가슴에 두르고, 전쟁터를 누볐다. 섬사람들은 뭍으로 가려면 어지간히 신경을 써야할 일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마을의 할망당이 큰일을 도모할 때마다 큰 역할을 해주었다. 생약식물인 당귀는 분포지역에 따라 참당귀, 왜당귀, 중국당귀로 나누며, 지나치게 복용하면 독약을 먹는 거나 다름없다.
흰뺨검둥오리가 수확을 끝낸 밭에서 당근을 먹고 있다. 탐조하는 내내 주변을 눈치를 보며, 누가 더 인내심이 있는지 겨루는 듯하다. 보통 제주의 해안에서 볼 수 있는 오리들은 겨울철새인데, 흰뺨검둥오리는 사정이 다르다. 시베리아에서 내려온 무리들이 제주에서 태어난 개체수보다 훨씬 많지만, 북녘에서 온 녀석들이 토박이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핀다. 주인없는 밭에서 먹잇감을 훔치려 해도 안전성을 담보하기 쉽지 않다. 북녘에서 내려온 떼까마귀들이 카보퓨란 성분이 들어있는 먹이를 먹고 희생당한 소식을 접한 터라 더 조심스럽다.
당근은 눈 건강에 좋다고 해서 어릴 적부터 밭에서 뽑아서 흙을 털어내고 바로 먹었었다. 요즘은 당근 쥬스를 비롯해 각종 요리에 제주산이 최고이며, 우리나라 생산량의 60% 이상이 제주산일 정도이다. 당근은 영양소와 미네랄이 풍부해서 다이어트 채소로 인기가 높으며, 특히 비타민A가 많아서 건강한 시력을 유지하는 데 탁월하다고 한다. 당연히 겨울철새에게도 당근은 고품격 겨울채소이며, 멀리 그리고 세심하게 보려면 당근을 즐겨먹어야 한다. 흰뺨검둥오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삭줍기에 나선 이유도 그런 것이다.
남녀노소의 유행어인 '당근이지'와 '당근 마켓'은 각각 '당연히 근거가 있지', '당신 근처의 마켓'의 줄임말이다. 당근과는 연관이 없는데도 당근하면 저절로 당근이 떠오르듯, 당근하면 모두 제주산 당근인줄 안다. 맛나고 품질이 우수하다고 소문나면, 가짜가 판을 치는 게 세상 요지경이다. 설명절을 앞둔 후보자들이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설왕설래하다가 자칫 가족끼리도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할 판이다. 아무나 참당귀를 품거나 당근을 먹을지언정, 주변 사람들이 다 당신편 일거라는 착각은 거두는 게 좋다. 당근이 좋다고 무작정 덥석 먹었다 간 크게 당한다. 당귀를 품었으면 당연히 생존해야 하며, 탈당이니 신당이니 창당이니 복당이니 당당하다간 품었던 괸당마저 잃을 수 있다. 당근을 먹은 흰뺨검둥오리의 눈처럼 망경원과 현미경같이 세상을 꿰뚫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어디 후보자만 그럴까. 서로의 안위를 보장받기 위해선 서로가 당귀를 꼭 품어야 한다. 당근.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