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Life is short, and art is long.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로 번역되곤 하는 이 문장은, 실은 '인생은 짧고 기술은 길다'로 번역해야 본뜻을 알아챌 수 있다. 이 문장의 그리스어는 이렇다. Ὁ βίος βραχύς, ἡ δὲ τέχνη μακρή. 의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히포크라테스가 기원전 3세기에 남긴 '잠언집'의 첫 문장이다.
'의술의 길은 먼데 인생은 짧다'는 얘기다. 젊은이는 금세 늙어가는데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스어 τέχνη(테크네)는 기술이다. 그런데 이 기술이 예술로 둔갑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문제의 출발은 'art'라는 단어에 있다. 아트(art)의 어원으로 라틴어 아르스(ars)와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를 든다.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 개념은 기하학, 웅변술, 항해술, 용병술 등과 더불어 의술가 같은 기술영역을 담고 있다. 물론 회화와 조각, 건축 등과 같이 오늘날 예술로 분류하는 개념들도 들어있다. 이렇듯 고대 그리스에는 기술과 예술을 가리지 않고 테크네라는 개념 안에 포함시켰다.
한자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술을 이루는 한자 藝와 術 양자 모두는 재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선비들의 재주를 육예(六藝)라고 하여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 등을 가르쳤다. 이는 서구 중세의 교육 체제에서 라틴어 아르테스 리베랄레스(artes liberales) 안에 '문법과 수사학, 논리학'의 삼학(trivium)과 '산술, 기하학, 점성술, 음악'의 사과(quadrivium)를 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영어로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라고 부르는 교양의 출발이다.
자유인이나 지식인의 기술과 달리 장인들의 기술은 물질생산과 직접 관계를 맺는다. 아르테스 메카니케(artes mechanicae), 영어로 메커니컬 아츠(mechanical arts)는 회화, 조각, 건축 등을 포함해 수공예 영역을 담고 있었다. 한자문화권의 공예(工藝)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장인들의 기술을 뜻했다. 유럽 중세의 이와 같은 위계는 르네상스를 맞이하여 예술 전반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지식인으로서의 자기결정권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거쳤다.
르네상스 이후의 예술은 단순한 수공예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학문과 지식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근대성의 전제조건으로 예술을 통한 공론장이 손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대 이후의 예술은 공론장의 중심에서 인류의 사유와 감각을 직조하는 핵심 기제로 자리 잡았다. 예술과 기술이 별개의 영역으로 성장해온 현대사회에서 예술의 창의성과 기술의 혁신성이 조화를 이루려는 도전과 실험이 한창이다. 바야흐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 보완으로 새로운 예술과 기술을 열어가는 융복합의 시대이다. <김준기 광주시립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