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혼자 부르는 '오빠 생각' 유감

[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혼자 부르는 '오빠 생각' 유감
  • 입력 : 2024. 03.27(수) 00: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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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노래는 가사와 음률을 통해서 우리에게 감흥을 준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 얽힌 추억을 상기시키고 어떤 장면을 그려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러한 노래를 혼자서 부를 때는 부담이 적다. 잘하려고 연습하는 경우만 아니면 박자와 음정을 무시해도 되고 가사가 조금 틀려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요즘 혼자 부르는 노래로 '오빠 생각'이 있다. 동요를 접하기 어려운 시대라 이 노래를 모르는 청소년들이 꽤 있을 것 같아 사족을 단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로 시작되는 그 동요다. 노랫말은 일제 강점기, 수원에 사는 소녀, 최순애가 서울에 간 오빠를 그리워하며 열한두 살 때 지어서 중앙문예지에 응모하고 입선된 동시다. 곡은 당대 유명한 작곡가 박태준 선생이 시를 보고 즉석에서 썼다고 한다. 이 노래를 '국민학교' 때 신기해 보이는 풍금에 맞추어 배웠다. 그 후 운동회와 학예회에서 자주 부르고 들었다. 아버지가 되어서는 아이들을 재울 때 자장가로 많이 불렀다.

노년에 든 사람이 이 봄에 부르는 노래가 동요 '오빠 생각'이라니 스스로 봐도 엉뚱하다. 엘피판 레코드가 귀했던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나오는 유행가를 한두 곡씩 불렀던 세대에 속하는 사람이다. 더욱이 트로트(트롯)와 케이팝이 주류인 시대에, 소위 '하르방'이 '누이'도 아닌 '오빠…'를 부르고 있다니. 또한, 가사도 봄과 직접 관련이 없다. 논과 숲에서 우는 뜸북새와 뻐꾹새는 여름 철새이다. 겨울 철새 기러기가 북에서 오고, 귀뚜라미가 슬피 우는 계절은 가을이다. 게다가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라는 끝부분은 무상감만 더한다. 그런데 왜 이 봄에 이 동요일까. 그건 이 노래가 주는 장면이 요즘의 시국에 대한 감정과 상관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이 노래를 부르면서는 마음이 편치 않다. 4·3추념일이 1주일 후다. 무자년 그때, '산과 들에서 꿩과 까마귀가 다투며 울 제' 집 떠나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와 오빠'를 그리워하는 식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마침 왕벚꽃이 한창이라 '뻐꾹 뻐꾹 뻐꾹새…' 대신 '벚꽃 벚꽃 벚꽃이 피고 질 적에'로 부를 때도 있다. 제주는 칠십오 년 묵은 한을 그 꽃처럼 피우고 지우면서 올해도 '사월병'을 앓을 것이다. '상대가 죽어야만 하는 상생'을 외치면서 또 처연하게 함께 아플 것이다. 언제면 이 질곡에서 벗어날까. 또한, 나라 안의 무질서와 혼돈은 4월 10일이 다가오면서 그 도를 더하고 있다. 정국 관련 뉴스가 보기 싫어서 텔레비전을 외면한 지 오래다. 원칙과 정의가 무시되는 '싸움판', 뻔뻔스럽고 방약무인한 '선수들'과 공정심을 잃고 방임하는 '구경꾼들'을 보면 아프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직하고 떳떳한 사람들이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세상은 과연 올까. 이 모두가 혼자만의 상념이기를 바라면서 이 노래를 또 흥얼거린다. <이종실 오라동자연문화유산보전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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