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훈의 한라시론] 제주 전통마을의 일상생활

[진관훈의 한라시론] 제주 전통마을의 일상생활
  • 입력 : 2024. 04.11(목) 02:00  수정 : 2024. 04. 11(목) 09:11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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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은 듯하다'라는 속담에 나오는 피죽은 볏과 곡식인 피(稗)로 만든 죽이다. 피는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는 힘이 강하며 예전에는 구황작물로 쓰였다.

제주 산간지역에서 재배했던 피는 파종하고 나서 3개월 후, 추분 전후 '호미'로 뿌리 부근 줄기를 베어낸다. 이 일을 '빔 질'이라 했다. 베어낸 피를 다발로 묶고 집 마당으로 운반한 후 또 한 번 이삭만 잘라낸다. 이 작업을 '톧는다'라고 했다. 이 작업은 베어낸 후 낫을 이용하여 며칠 동안 했다.

'도리 송당 큰아기들은 피 방아 찌려 다 나간다.' 제주 민요 어부가에 나오는 가사다. 피는 일곱 차례 찧어야 모두 벗겨져 비로소 먹을 수 있다. 제주에서는 이를 '능그기'라 했다. 예전에는 '능그기' 힘들어 피 재배를 꺼렸다 한다.

교래, 송당 큰아기들만 고생한 건 아니다. 함덕 신짝 붙이기, 조천 망건 틀기, 신촌 양태 틀기, 별도 탕건 틀기, 도두 모자 틀기, 고내, 애월 기름장사, 대정 자리 짜기, 김녕, 갈막 태왁 장사, 어등(행원)과 무주(월정) 푸나무 장사, 종달 소금장사, 정의(성읍) 질삼(길쌈) 틀기, 죽성 고다시 산딸기, 다래 장사, 맨돈(도련) 대그릇 장사 등 마을마다 지역 특성에 맞는 가내 수공업이나 부업 활동을 참, 열심히도 했다.

그뿐 아니다. 김녕 큰아기들 물질하러 다 나갔고, 협재 옹포 큰아기들 뗏목 타기 제격, 몰레물(사수동) 큰아기들 모래 운반 제격이라며 조금도 쉬지 않았다. 아주 가끔은 담배 피우기, 화투치기, 속옷 치장도 했다.

그녀들의 소소한 일상이 기록되어야 한다. 그 치열했던 일상이 역사적 사실(史實)로 제자리 잡아야 한다.

제주사(史)는 빈약하다, 1차 자료가 부실하다. 중앙정치사로만 보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같은 관찬(官撰)사나 탐라지, 탐라순력도 같은 지방지, 유배 온 사람들의 관점 다른 기록 등에만 의지하다 보면, 그런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부실한 사료를 토대로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미화하거나 과장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렇다고 진상(進上)의 역사만 그럴듯하게 스토리텔링 하기도 부끄럽다. 진상의 역사는 진짜 진상이다. 예전 임금에게 올렸던 진상품이라는 광고를 보면 그보다, 진상품 마련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다.

이 대목에서 실제 역사의 참주인이며, 생활의 달인들이었던 여성, 농민, 백성들의 일상생활사 발굴이 중요해 보인다. 그동안 무시되고 소외된 제주 선인들의 일상생활사 발굴로 역사의 균형을 제대로 맞춰가야 옳다.

잃어버린 중산간 마을에 남아있는 마을 원형, 집터, 살레 밭, 우물터, 몰방애, 마을당, 마을 안길, 올레 등을 입체화하고 상징화하여 그 속에서 살다 죽어간 제주 역사의 진정한 영웅들을 인식의 한복판에 등판시켜야 한다. <진관훈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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