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4월 10일 치러진 총선은 67%의 높은 투표율이 말해주듯이 대다수 국민이 자기 일처럼 참여한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결과는 야당의 대승, 여당의 참패였다. 내로라하는 정치평론가들의 총선 평가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문화평론가 김갑수옹(翁)이 시사 유튜브 '경향티비'에서 언급한 '영웅의 탄생'이었다. 이는 내가 속한 독서모임이 5월 과제로 읽고 있는 소설과도 얽히는데, 러시아 작가 레르몬토프가 1840년에 발표한 '우리 시대의 영웅'이다.
내 나이 아래인 그의 이름에 굳이 옹(翁)이라 덧붙이는 이유는 그의 팬들이 그를 부르는 애칭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가 요약한 한 줄 관전평은 "이재명을 건졌다"였다. 사법살인의 늪에서 건져 올렸다는 뜻만이 아니다. 새 시대를 만들어 갈 영웅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우리나라는 이제껏 산업화 성공과 선제적 디지털 전환을 통해 선진국 신화를 이루어 왔지만, 넘어야 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전제한다. 김 옹(翁)은 초격차 기술력을 요구하는 미래의 에너지 전환기가 바로 그 도전이며 나라의 존망이 걸린 문제로 본다. 이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방향성을 명료하게 가진 지도자라면 그 누구라도 '이 시대의 영웅' 후보에 들만하다.
이번 선거전에서는 영웅 이재명과 더불어 스타 조국과 한동훈 같은 아이돌의 탄생도 있었다. 이와 같은 비유를 들라치면 사람마다 진영마다 제각각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왈가불가 설왕설래는 당연하다.
앞서 말한 '우리 시대의 영웅'은 주인공 페초린을 중심으로 다섯 편의 일화를 하나의 소설형식으로 묶은 모험담이다. 이야기의 무대는 황제 니콜라이 1세가 다스리던 전제국가 제정러시아였다. 당대의 정치와 사회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끝없이 방황하는 주인공은 '잉여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 문학사에서 푸시킨은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의 주인공 '오네긴'을 통해 '잉여인간'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여준다. 명망 높은 귀족의 후예 오네긴은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라 그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었지만, 그 자신은 어떤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한량으로 살아간다. 사회에 만연한 부패와 부조리에 눈을 감고 개혁의 노력을 포기하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회 현실을 바꾸려는 동기의 부재가 원인이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영웅은 어떠한 모습일까? 이영준 선생과 이황 교수가 함께 펴낸 '우리 시대의 영웅을 찾아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타인이나 사회적 가치를 보호하고 자기희생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일체의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않은 채 인류 공통의 보편적 윤리를 자발적으로 용기 있게 실천하는 사람, 이러한 행동의 결과로 희생이 있더라도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 시대의 영웅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 깜짝 출연한 정치 스타의 모습은 또 한편 '영웅적'이었지만, 신생 아이돌의 처신에서는 '잉여인간'의 일면을 목격할 수 있을 뿐이었다.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