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의 월요논단] 제주미술사를 정리할 때

[김영호의 월요논단] 제주미술사를 정리할 때
  • 입력 : 2024. 06.03(월) 00:00  수정 : 2024. 06. 06(목) 12:14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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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의 제주갤러리에서 고영만 화백의 개인전이 지난 29일 막을 올렸다. 제주 '원로작가 특별기획전 시리즈'의 일환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생명-공간 :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명 아래 60여 점의 회화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침선 유채화 기법'과 '나이프 터치 기법' 등 작가의 독창적인 표현 방법뿐만 아니라 화백이 줄곧 채택해 온 생명, 생태, 자연, 공간, 환경, 신화 등의 화두를 담은 작품들이 서지 자료들과 함께 전시 중이다.

이번 전시회가 주목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9순을 앞둔 노화백이 평생을 거치며 다져온 독창적인 표현 기법과 진정성이 담긴 작업들을 18년 만에 한 공간에 모아 소개하는 회고전 성격의 전시라는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는 화백이 예술세계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제주미술사의 얼개를 구성하는 원료로 확장되어 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화가는 자신이 바라본 세상을 자신의 고유한 방법으로 그려낸다. 화가의 시선과 기법이 특이할수록 표상된 그림 역시 개성적인 모양을 띠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각각의 화가가 낳은 작품을 함께 아울러 정리해 보면 거기에서 작가가 속해 있는 지역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이른바 제주 작가의 작품에는 제주라는 자연과 환경을 살아온 제주인의 행동양식이나 상징체계가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제주문화라고 부른다. 이러한 가치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준과 학문적 연구를 통해 빚어지는데 이른바 미술사가 이러한 일을 담당해 왔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제주미술사 연구의 필요성을 떠올리게 된다.

제주미술사는 제주미술의 발자취를 정리해 놓은 자료라 할 수 있다. 역사 기술의 바탕이 되는 것이 시간이고 보면 미술사에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개의 시간 축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미술사는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시점에서 선별 정리하고 그 가치를 미래로 추상해 값진 문화유산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제주미술사를 정리하는 일은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의 좌표를 설정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를 진단하는 일이다. 우리가 예술을 시대의 자식이라 부르는 이유는 예술이란 끝없는 현재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제주미술사의 재료들은 제주의 자연처럼 강렬하고 풍성하다. 추사로부터 시작된 '유배미술'에서, 일제 강점기에 극대화된 '디아스포라미술', 전쟁중에 형성된 '피난민미술'은 제주미술사의 특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주제들이다. 이 모든 제주미술사의 얼개들을 학술적으로 정리하고 전시와 도서발간을 통해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 가는 일이 당면 과제로 남아 있다. 제주미술사 연구는 그동안 제주도 기관과 단체들이 추진해온 전시와 출판사업들의 성과를 제주문화로 종합 정초하는데도 기여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영호 중앙대 명예교수·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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