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아득한 시간에 대한, '유감(有感)'

[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아득한 시간에 대한, '유감(有感)'
  • 입력 : 2024. 06.26(수) 01: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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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나는 지금 당신을 얼마나 격렬하게 사랑하고 있는가… 당신과 헤어진 이후 날이면 날마다 공허해서 견딜 수가 없소. (중략) 나의 호흡 하나하나는 귀여운 아내, 남덕의 진심에 바치는 대향의 열렬한 사랑의 언어라오.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1916-1956)' 중에서

'소' 연작으로만 알고 있던 화가 이중섭의 삶을 제주에 입도했던 2009년, 뒤늦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일본에서 만난 연인 마사코와 절절하고 처연한 러브스토리는 이미 여러 권의 책으로 출간된 만큼 익히 알려져 있다. 식민지 시절 만나 긴 연애 끝에 힘겹게 결혼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부산을 거쳐 제주도로 피난 온 이중섭 가족은 1년 동안 제주도에서 함께 지내다 다시 부산으로, 그러나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낸 후 이중섭의 삶은 온통 그리움으로 점철된다.

예술작품이 작가의 사연과 만나면 또 다른 감각의 통로를 만들기 마련이다. 그의 강하지만 처절하고, 굵고 드세면서도 섬세한 화풍은 시대의 광풍과 애절한 그리움 앞에서 버티고, 또 버틸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화가의 생존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생존의 이유였던 아내와 두 아들을 향한 수많은 편지와 그림들이 가슴에 더욱 파고들었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2009년 늦가을 우연히 걷게 된 이중섭거리와 그 길 한편에 자리한 이중섭 미술관과 그의 가족이 거주했던 작은방까지 천천히 휘돌던 그날, 내리쬐던 햇살의 감각이 여전히 선연한 이유일 것이다.

2024년 여름 초입, 제주도립미술관에서 개최된 '시대유감(時代有感)'에서 다시 이중섭의 작품을 만났다. 2만3000점에 이르는 개인 소장품은 2020년 이건희 씨가 사망 후 2021년 국가에 기증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건희 컬렉션의 전국 순회전은 상당한 관심과 함께 전국에서 200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미술관으로 불러 모았다.

전시는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작품들을 접할 기회였다. 처음 보거나 사진으로만 접했던 거장들의 작품은 오래 발걸음을 붙잡았고 원화가 주는 매력은 질감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졌다. 그러다 이중섭의 '은박화' 앞에서 멈춰 섰다. 작은 은박지 위에 그려진 그림은 그가 놓여있던 시대, 쉽게 바스러지고 구겨지기 쉬운 위태로운 삶과 함께 그때의 '호흡' 그리고 그날의 '언어'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했다.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시대유감'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 역사와 시대 속 여러 감정들의 결정(結晶)을 시대를 초월해 함께 호흡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시간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그 매개가 '예술'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쪽, '시대유감'까지의 시간이 유독 길고 아득하게 다가왔다. 전시가 종료되기 전, 그 아득한 시간 속으로 다시 걸어갈 것 같다. '지금이라도' 볼 수 있고,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으므로. <김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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