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기념물 지정된 서귀진지곳곳 안내판 역사적 가치 강조우물 밖 학교·체험마켓 등 개최지속 안돼 역사 속 유산으로만솔동산거리 오랜 기억 품은 장소도시의 특별함 더할 핫 스폿 기대
[한라일보] 지난봄, 사방의 나무들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듯 초록물이 들 무렵에 서귀포 도심에서 모두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가 봉행됐다. 올해로 13회째인 서귀포봄맞이축제의 막을 열며 지난 3월 서귀진지(제주도기념물 명칭, 서귀진성 터)에서 재현된 남극노인성제다. '무병장수의 별'로 불리는 노인성을 관측할 수 있는 서귀포에서 새봄의 기운을 담아 제관과 참석자들이 이 땅의 무사 안녕을 함께 빌었던 자리였다.
그날 모처럼 서귀진지에 관람객들이 모여들었다. 서귀진지는 서귀포를 상징하는 대표적 유산이자 솔동산거리의 '핫 스폿'이 될 만한 장소다. 그럼에도 서귀진지를 활용하는 행사는 지속되지 못하고 있다. 서귀포시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사업인 작가의 산책길과 연계해 서귀진지 넓은 잔디밭에서 체험 프로그램 등을 꾸려 왔지만 최근 몇 년 동안엔 그마저 끊겼다.
서귀진지. 언덕배기에 서면 서귀포시 도심과 서귀포 앞바다, 주변 섬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진선희기자
서귀진지 안내소. 지금은 문이 닫혀 있다.
▶언덕배기에 서면 서귀포 앞바다와 주변 섬 한눈에=서귀진지는 2000년 11월 제주도기념물로 지정(64필지 7835㎡)됐다. 동서남북 곳곳에 세워진 유산 안내판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방어 유적의 하나였던 서귀진의 역사적 가치를 강조하는 문구가 새겨졌다.
정의현 관할이던 서귀진은 세종실록(세종 21년 윤 2월 4일)에 근거해 1439년에 최초 축성된 것으로 본다. 해당 기록에는 서귀방호소에 성곽이 없어 왜적이 밤을 타고 돌입해오면 군사가 의지할 곳이 없다며 성을 축조하도록 요청했고 이를 허락했다는 내용이 있다. 애초 홍로천에 있었으나 조선 선조 23년(1590) 이옥 목사가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당시 규모는 주위 251m, 높이 3.6m에 달했고 많게는 100여 명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대까지는 기와 건물 3동과 성곽이 남아 있었는데 제주4·3사건 때 담을 헐어 마을을 방어하는 성을 쌓는 데 사용됐고 그 후에도 개인 건축 용도 등으로 가져가면서 날로 훼손됐다.
서귀진은 사적화 사업으로 토지를 매입해 담을 두르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서귀진지 안에는 발굴 조사를 토대로 성에 주둔하는 병사들의 식수용으로 만든 집수정, 정방폭포 상류에 있는 정모시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한 수로가 정비되어 있다. 되살려 놓은 옛 서귀진 건물이 달리 없으나 큰 우물 터가 감흥을 일으킨다. 거기다 서귀진지 언덕배기에 서면 서귀포 앞바다와 주변 섬들이 눈에 걸리며 시야가 밝아진다.
서귀진에 얽힌 이야기들을 붙잡으려는 노력들은 있었다. 송산서귀마을회와 작가의 산책길 해설사회는 '솔동산 8경'(서귀진성(西歸鎭城), 목사고목(牧使古木), 서진노성(西鎭老星), 신작대로(新作大路), 장수지원(長壽之園), 송산고적(松山古跡), 중섭휴의(仲燮休椅), 백년수로(百年水路))을 엮었다. 서귀포시는 '영주 12경'에 속하는 '서진노성'에 근거해 노인성 사업을 추진했다. '서진노성'은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원조가 1841년 9월 서귀진에 머물면서 쓴 시제에서 따온 말로 서귀진에서 노인성을 바라본다는 뜻을 지녔다. 서귀포시는 2016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공모한 생생문화재 사업에 선정되면서 춘분인 3월 21일과 추분인 9월 23일에 노인성 별 찾기 등 노인성 축제를 개최한다는 계획을 짰다.
지난 3월 서귀진지에서 재현된 서귀포봄맞이축제 남극노인성제.
서귀진지 집수정. 성에 주둔하는 병사들의 식수용으로 쓰였다.
▶문 닫힌 서귀진지 안내소… 언제쯤 다시 열릴까=코로나19 발발 이전에 서귀진지를 배경으로 펼쳤던 행사가 적지 않았다. 이중섭거리 일원에서 진행했던 서귀포시의 문화예술시장이 인근 건축물 신축 등으로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야 하는 사정과 맞물리면서 행사장이 솔동산거리 서귀진지까지 확대된 영향도 있었다.
서귀포시는 인근 골목 상권까지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솔동산 가을밤 노지 소풍'을 기획해 서귀진지 방문객을 위한 공연,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서귀포시와 지역주민협의회는 가족과 함께하는 피크닉 마켓인 '솔동산 장', '작가의 산책길 체험 마켓' 등을 운영해 서귀진지에서 수공예품 판매, 만들기, 공연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문화예술 체험 프로그램인 '서귀진성 터 우물 밖 학교'도 개설했다. 시화 전시, 서귀진성 터 그리기, 보물찾기, 동화 낭독 등 아이들이 유서 깊은 곳에서 뛰놀며 창작도 하고 체험 활동도 했다.
송산동과 송산서귀마을회에서도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서귀진지 등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벌인 적이 있다. 솔동산거리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은 바람에서다.
서귀진과 그 거리에 흐르는 수많은 사연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노인성 사업은 탐라문화유산보존회 등에서 별 해설사 양성 등 테마 프로그램을 이어온 반면에 서귀포시가 꾸준히 주최해온 행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작가의 산책길 해설사회 등이 내놓았던 '솔동산 8경'은 고색창연함을 넘어 오늘날의 감각을 입혀야 공감대가 커질 것이다.
송산동에서 서귀진지 입구에 설치한 안내소는 어떤가. 서귀진의 역사적 의미를 나누고 송산동 등에 있는 주요 관광지를 홍보하기 위해 2018년 안내소를 지었지만 현재는 문이 닫혀 있다.
수백 년 전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이름 없는 백성들이 돌을 날라 쌓았을 서귀진. 그 터는 옛 서귀포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품은 곳으로 작가의 산책길 코스에 있는 하나의 점(장소) 이상이다. 서귀포라는 도시의 역사를 기억하고 거리에 특별함을 더하는 서귀진지의 존재를 시민들에게 더 많이 알리고 더 자주 써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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