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에서-김명인
[한라일보] 가까이 우체국이 있고 바다가 활짝 펼쳤으니
네게 엽서나 한 장 띄워볼까,
우체국 유리문을 밀치려다 만다
아득히 넓어 너는 비경처럼 가뭇한데
저 거리를 엽서 한 장으로 메울 수 있겠니?
산굼부리는 구름을 물어 삐딱하고
일체를 조섭하느라 뒤늦게 온 동풍이
먼 데 풍력을 슬그머니 건드린다
마음은 돌까 말까 망설이는 풍경에 거두어지니
노을이여, 우리 사이엔 오래전의 물결
너는 잦아도 그만인 날개 같고
나는 한사코 으르렁거리는 파도로 내달리니
안부란 미끄덩 청태 낀 바위의 세목일 뿐
누구 탓이라니, 시간이라면 네가 더 누려야지
삽화=배수연
내가 있고 바다 때문에 입술 끝에 걸리는 네가 있다. 우체국에서 네게 엽서를 부치려다 만다. 너는 내게 비경이고 가뭇하기에. 비경에 다가갈 수 없고 가뭇함에 도리 없는 인간은 물러나 있다. 먼 데 풍력이 마음을 건드릴 때 나와 너 사이에 있는 오래전의 물결, 너는 잦아들어도 그만인 것 같고 나는 한사코 으르렁거리며 내달리니 안부란 무엇이겠나. 그저 청태 낀 바위가 거둘 뿐인 것. 달처럼 둥근 월정리에서 나와 너의 거리란 또 누구 탓이겠는가. "시간이라면" 그저 서로 입장이 딱할 뿐. 앞에 바다를 놓고 마음에 파도를 부르는 시간이 생을 지속시킬 때 노을은 무슨 감정인지, 무슨 말인가 한다. 결국 풍경 앞에서 일체가 조섭하는 것이기도 하고, 해체되는 것이기도 한데, 그의 시에서 자아는 망설임이 있다 하여도 어떤 특정한 위상에 의탁하지 않은 채 흘러나온다, 조용하게 자연스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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