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처서(處暑)를 기다리며

[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처서(處暑)를 기다리며
  • 입력 : 2024. 08.21(수) 10:1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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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내일이면 여름을 견뎌낸 이들이 그토록 기다린 '처서(處暑)'다. 일기 예보로는 더위가 평년에 비해 좀 길어진다고 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지속된 더위를 견뎌온 우리로서는 처서에 이르렀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현실에 마음이 기울어진 이는 '폭염'보다 비상식의 세태를 보며 더 힘들다고 했지만,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선배는 월동채소를 위해 모판 관리며 밭 갈기를 걱정했다. 계절의 흐름을 나직이 바라볼 때도 됐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삶이 버거워 청량함을 마냥 그려보게 된다.

세시풍속과 연결해서 제주에서는 오래전부터 처서에 비가 내리면 흉작을 면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름 농사를 짓는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더위를 식히는 일이기도 하고 밭갈이를 위해서도 이때쯤 촉촉하게 내리는 비를 바라고 있다. 세시풍속과 연결되는 삶의 양태가 십 년, 이십 년의 단위로 살펴봐도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다행히 올해는 처서 전후 꼭 이 시기에 비가 내리면서 더위를 씻어줄 것 같다. 그리고 여름이 오기 전 전국 뉴스로 도배가 된 제주의 몇 가지 일도 문제의식으로 지양하게 되리라.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비계 삼겹살로 잇속을 챙기는 식당이며, 스페인산 돼지고기를 제주 흑돼지고기로 속여 판매하는 업체들도 뉴스에 도배가 됐다. 어디 이뿐인가. 제주 바다의 쓰레기와 생태계의 문제 그리고 숲과 올레길이며 둘레길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훼손과 파괴의 현장들은 늘 이 시기에 단골 뉴스가 되곤 한다. 자연과학에서, 찰스 다윈과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에 의해 제안된 자연선택 이론이 있다. 경쟁의 결과 생존한 개체의 유리한 형질이 대를 이어 내려옴으로써 결국 새로운 종이 생겨난다는 이론이다.

우리의 삶은 시대상이며 유행의 흐름과 필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관광산업이 제주도의 재정 확충에 그 비중이 적지 않기에 제주도정은 어떤 면으로든 새로운 변화의 동인을 찾아가게 된다. 무엇보다 관광객 스스로 제주의 가치를 찾고 선택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자연선택 이론을 차용해서 생각해 보면 그렇다. 한동안 치솟던 제주의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면서 젊은 사람들이 시골로 귀농한다고 한다. 비닐하우스에 의존하던 농법을 극복하고 기후와 환경에 특화된 천혜의 방법을 모색한다고 한다.

'폭염'과 '열대야'로 몹시도 쪼그라들게 해도 살아있음의 의미는 두드림(叩)이라고 했다. 집안에서 선풍기를 껴안고 에어컨 앞에서 늘어질 수만은 없어 바닷가를 찾거나 숲이며 올레길 등을 걸어보면 관광객들에게는 뉴스에서 도배된 제주의 이슈는 사실 가십거리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짧은 휴가를 얻어 제주를 찾아와서 호흡할 수 있는 것만으로 치유며 위안이라고 한다. 그렇다, 제주의 가치는 시대상이며 유행에 흔들리는 게 아니다. 제주 본연의 것만으로도 자연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제주는 오늘이 축복이고 내일은 풍요다.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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