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84)갈대-신경림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84)갈대-신경림
  • 입력 : 2024. 09.10(화) 01: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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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삽화=배수연



이 시는 신경림 시인이 대학 2학년 때 쓴 시로 알려져 있으니 그의 데뷔작이라 해야 할 것이다. 시인은 술회했다. 고향 마을 뒤 산정 고원에서 바라보이는 "가파른 벼랑 밑에 흘러가는 새파란 강물, 멀리 굴참나무 밑에서 우는 뻐꾸기, 갈대밭에서 모여 우는 산바람, 고원을 뒤덮은 달빛, 이 모든 것들을 가느다란 한 줄기 갈대 속에 집어넣는다는 생각으로" 썼다고.

그는 왜 일체의 사실적인 서술 없이 갈대의 흔들림을 통해 얻은 '갈대의 울음'만을 가지고자 했으며, 그것만을 우리에게 전한 것일까. 전쟁이 끝난 산천과 인간 세계의 폐허와 와해가 그가 보고 듣는 것의 전부여서, 그래서 산다는 것이 속으로 우는 것임을 확인한 것이라면 젊은 시인의 현존재의 해석법이 자성(自省)적인 태도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오늘의 시인이다. 맑은 자성이야말로 피폐한 삶의 장에 가장 시를 접근시킬 수 있는 변함없는 양식일 터이니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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