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건입동 주민 80여 명으로 구성된 건입동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은 예비 마을기업이다. 지난해 9월 행안부 예비 마을기업으로 지정되면서 제주시로부터 받은 지원 예산은 건입동 주민 대상 전통주 전문가 양성 과정을 추진하는 종잣돈이 됐다.
덕분에 3개월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조합원과 주민들이 십시일반 출자금을 모아 건입사협 산하 사업단 농업회사법인 만덕양조를 창립할수 있었다. 지난 6월 말 건입동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제주특산주 '만덕7' 막걸리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마을기업 육성사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마을기업은 지역공동체의 특화자원을 활용해 주민들이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주도해서 일자리와 소득을 만드는 마을단위 기업을 뜻한다. 정부 차원의 마을기업 육성정책 도입은 양극화로 소멸해가는 지역 사회의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10여 년 넘게 운영되던 마을기업 육성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정부가 이례적으로 올해부터 마을기업 신규 지정을 중단하고, 순차적으로 마을기업 예산 지원을 줄여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도내 12개 예비 마을기업들은 마을기업 신규 지정은 고사하고, 자칫 예비 마을기업 지정 취소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정부의 편향된 인식과 골이 깊은 정치적 입장 차이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을기업 정책의 추진 성과에 대한 합리적 평가는 고사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오히려 일부의 보조금 부정수급, 부실 경영 논란만 부각시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은, 마치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듯한 정부의 현명하지 못한 대처로 여겨진다.
그동안 마을기업 육성사업의 근본적 한계를 우려하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여타 사회적경제기업과 달리 마을기업 육성사업은 유일하게 독자적인 근거법이 없다. 지침과 조례만으로는 마을기업의 성장기반 마련이 쉽지 않다. 국회에서도 오래전부터 마을기업육성지원법안 제정을 시도했으나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번번이 폐기되기 일쑤였다.
도내 마을기업 수는 전국 대비 1%도 안되는 43개에 불과하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역밀착형 마을기업을 발굴·육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남과 대구같이 국비 없이 지방비로만 예비 마을기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자체도 있다. 마을기업 육성은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투자라는 시각이 반영된 행보다.
최근 무더위가 꺾이자 육지부 의회, 여성경제인협회 등 기관단체에서 만덕양조를 방문한다는 연락이 왔다. 지역사회를 공동체답게 만들고자 하는 마을기업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때일수록 창업부터 성장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마을기업이 겪는 자본, 인력, 판로 등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 당사자가 머리 맞대어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제주도정의 적극 행정을 기대한다. <김명범 행정학박사·제주공공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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