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의 문화광장] ‘제주건축의 봄’은 오고 있는가…

[양건의 문화광장] ‘제주건축의 봄’은 오고 있는가…
  • 입력 : 2024. 09.24(화) 06: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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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추석 명절은 일 년 중 가장 풍요로운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건축계의 상황은 좀처럼 호재가 보이지 않는 암흑시대에 빠져있는 듯하다. 건설뿐만 아니라 건축설계 시장의 침체로 민간에서 주도하는 설계업무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공공에서 발주하는 현상설계 공모에 제주 건축사들의 참여도가 높아졌다. 훌륭한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서는 응모하는 작품 수가 많아진 것을 환영할 일이나, 그 이면에는 용역비의 수십 배에 달하는 사회적 자본이 동시에 소모되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좋은 공공건축을 만들어내고, 궁극적으로 건축문화의 함양을 위한 첫 단추로써 현상설계 공모 방식을 대체할 만한 제도가 마땅하지 않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제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건축 현상설계 공모의 결과를 분석해 보면 우려스러운 경향이 감지되고 있다. 닫혀 있는 물리적 환경 안에서, 한정된 참여자에 의해 수년 동안 제도가 시행되다 보니, 서로를 모사하는 '문화적 동종교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오래전부터 제주 건축계가 경계해왔던 이슈 중 하나다.

하나의 사례를 든다면, 현상설계 출품작의 건축 재료로 빨간 벽돌이 유난히 많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벽돌을 선호하는 이유는 랜더링이 제한된 설계도서 조건에서 심사위원의 눈을 끌 수 있는 재료로써 유리하고, 결과적으로도 좋은 평가로 이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 한다. 이는 단편적인 사례이지만, 뚜렷한 건축적 역사의식이나 철학 없이, 미디어에 노출되거나 찰나적 이미지로 대중의 호감을 얻는 데만 치중되어 있는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제주는 그에 더해 닫힌계 안에서 상호 참조에 의한 매너리즘적 경향이 더욱 우려스럽다.

그러나 최근 제주교육청의 모 학교 증축 현상공모에서 이러한 기우를 불식하는 긍정적인 작품을 심사할 기회가 있었다. 예정된 대지는 수십 년 된 나무들로 가득했고, 심사위원들 간에도 이 나무들을 없애고 교실을 짓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하는 고민이 있을 정도였다. 대다수의 출품작은 그리 넉넉지 않은 부지 면적에서 최상의 효율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수목을 제거하는 안이었는데, 수목을 유지하고 빈 곳을 찾아 건축을 앉히는 특별한 제안이 하나 있었다. 기능이나 효율 그리고 공사비를 고려한 무난한 재료 사용에 점수를 주던 기존의 심사 방식에 도전하고, 오히려 심사위원들에게 '이 시대에 건축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묻는 계획안이었다. 열띤 토론의 결과로 무모하리만큼 용감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한 젊은 건축가의 도전에서 우리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건축의 본질과 가치를 상기할 수 있었고, 앞으로 가야 할 제주건축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오지 않을 고도(Godot)를 기다리는 블라드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삶을 살고 있다. 내일은 고도가 온다고 알리는 소년처럼, 제주 건축계의 기다림에 한 젊은 건축가는 내일이면 '제주건축의 봄'이 올 것이라 밝은 소식을 전하고 있다. <양건 건축학박사·가우건축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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