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의 하루를 시작하며] ‘비국민’을 위한 문학

[김동현의 하루를 시작하며] ‘비국민’을 위한 문학
  • 입력 : 2024. 10.16(수) 01: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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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온 나라가 놀랐다. 며칠 사이에 책 판매량이 급증하고 사인본은 중고 시장에서 수십 만원을 호가한다. 평소 문학에 관심이 없었던 독자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세계 곳곳에서 전쟁으로 날마다 주검들이 실려가는데 잔치를 하고 기자회견을 할 수 없다'는 한강의 결정도 놀라웠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력한 시적 산문"이라는 평가도 뜻밖이었다. 수상 이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광주항쟁과 4·3의 비극을 다룬 두 작품이야말로 역사의 폭력 앞에 너무나 나약했던 인간의 상처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부친인 한승원 소설가의 서울 이주 끝에 따라온 광주항쟁의 사진과 글들을 보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소년이 온다'를 만드는 원체험이 됐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면서 한강은 계간지 연재를 그만 둘 정도로 힘든 시절을 지냈다고 한다. 서귀포에 집필실을 얻어놓고 마치 수도하듯 한 자 한 자 적어나갔던 시간도 있었다고 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국 문학이 오래된 변방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결과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채식주의자'를 읽다가 중도에 포기해 버렸다, '불쾌했다'라는 평가도 있는 것처럼 한강의 소설 속 주인공은 현실의 불편함, 불쾌함, 이질감을 끝없이 생각나게 한다. 식물이 돼버리는 여성도, 육식을 완강히 거부하는 아내도, 아버지의 부재로 허무에 빠진 자식도,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바다에 빠졌다가 겨우 혼자만 목숨을 건진 이도 있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이들이라면 겪고 싶지 않았던 삶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소설 속 인물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자신을 갉아먹고,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를 준다. 한강의 소설 속 인물들이 실제 인물이었다면 멀리 하고 싶을 정도다. 이처럼 한강의 소설들은 소수자에 주목한다. 페미니즘과 생태적 상상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한강이 광주와 제주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 역사의 소수자로 남아있었던 광주와 제주의 이야기를 통해 소외와 상처,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따져보면 한국 문학은 오랫동안 상처와 소외에 대해서 말해왔다. 성공한 이들의 영광이 아니라, 무너지고, 부러지고, 쓰러진, 그래서 낙오자라고 비난받아온 이들에 주목했다. 황석영, 조세희, 한승원, 이청준, 박경리, 현기영, 임철우. 이른바 앞세대의 작가들이 펼쳐 놓은 대지가 있기에 한국문학의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그 넓은 벌판에서 한강이, 김연수가, 조해진이, 최은영이, 김금희가 피어났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이 땅의 '비국민'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환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주노동자와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와, 모든 비인간과, 이름 없는 곳에서 오늘도 삶의 고통으로 눈물 흘리고 있는 이들이여. 문학은 결국 우리들의 이야기다. <김동현 문학평론가·제주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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