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영웅의 반대말

[영화觀] 영웅의 반대말
  • 입력 : 2024. 10.28(월) 02:00  수정 : 2024. 10. 28(월) 12:38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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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 폴리 아 되'

[한라일보] SBS 금토 드라마는 사적 복수극의 릴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혈사제', '모범택시'시리즈에 이어 최근 방영 중인 '지옥에서 온 판사'까지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동반한 영웅 서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들이 기존의 히어로물과는 다른 것이 있다면 주인공들이 그저 선하고 바르고 옳은, 전형적인 재미 없는 인물은 아니지만 보는 이들이 원하는 정의로운 복수 만큼은 충분히 안겨 주고 있다는 것. 법의 처단이 느리고 불확실한데다 신뢰가 가지 않는 시대에 이러한 사이다 복수극의 패턴은 모든 콘텐츠의 영역에서 가장 확실한 카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쪽도 마찬가지다. '범죄도시'시리즈를 비롯해 최근 '베테랑 2'에 이르기까지 액션 장르물들은 대부분 이 컨셉을 수용한다. 법적 대리인을 믿지 못하는 시대의 클라이언트들이 만들어 낸 빠르고 선명한 쾌감의 대리인들이 지금 대한민국 콘텐츠를 지탱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기록적인 흥행을 거둔 데다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까지 수상하며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작 반열에 오른 '조커'가 5년 만에 속편 '조커: 폴리 아 되'로 돌아왔다. 고담시의 광대 아서 플렉이 희대의 빌런 조커로 변해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리며 폭발적인 팬덤을 양상했던 이 작품은 개봉과 동시에 처참할 정도의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는 중이다. 국내에서도 전편의 10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 60만 관객을 겨우 동원한 '조커: 폴리 아 되'는 개봉과 동시에 각종 예매 사이트와 포털 사이트 평점이 곤두박질하며 흥행 전선에 먹구름을 띄웠고 관객들의 실망감을 넘어선 분노는 결국 작품 위로 쏟아지는 속수무책의 폭우가 되어 버렸다.

초라하게 젖어 버린 올해 최고의 기대작 '조커: 폴리 아 되'가 극장에서 거의 막을 내린 시점에서 영화를 보러 갔다. 하필 가을 비가 쓸쓸하게 내리는 날의 마지막 상영이었고 300석에 이르는 대형 상영관에는 나를 포함해 두 명의 관객만이 있을 뿐이었다. 영화는 내내 조커를 보여주지 않았다. 영화 속에는 그저 교도소와 법정을 오가는 마르고 슬픈 범죄자 아서 플렉만이 존재했다. 분장을 지운 그는 무표정했고 무기력했다. 그런 그에게 조커의 열렬한 팬인 리 퀸젤이 접근한다. 그리고 많은 관객들에게 실소와 분노를 자아냈던 조커와 리 퀸젤의 노래가 시작된다. '조커: 폴리 아 되'가 뭇매를 맞은 이유 중 하나는 이 영화가 뮤지컬 장르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가창력을 지닌 가수 겸 배우인 레이디 가가가 리 퀸젤 역으로 캐스팅 되었을 때 기대와 함께 우려가 되었던 이유는 '조커'의 서사와 레이디 가가의 뮤지컬 장르가 어울릴까 였을 텐데 영화는 철저히 관객들의 기대를 택해 여지없이 저버린다. 이 영화는 '스타 이즈 본'이 아니다. 아서는 리 퀸젤을 사랑했지만 리 퀜젤은 아서 속 조커를 사랑했었고 그 조커를 다시 꺼내 보고 싶었을 뿐이니까. 망가진 스타를 회생시키고 싶다는 리 퀸젤의 욕망은 어쩌면 관객들의 욕망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당신은 다시 그가 될 수 있어, 그가 되어서 카타르시스를 돌려줘' 라는 이 주문은 맥없는 부메랑이 되어 리 퀸젤과 관객에게 돌아온다. 아서는 한때 조커였으나 조커가 아니고 조커로 돌아가려 하지도 않는다. 이러니 리 퀸젤도 관객도 그를 영원히 사랑할 리 만무하다. 관객들이 기대한 사이다는 진작에 김이 빠졌고 사랑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던 남자 아서에게는 수면 위로 떠오를 마지막 이유 조차 사라져 버렸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영웅 서사 시리즈의 발목을 스스로 자르는 야심의 영화다. 더 이상의 농담은 하고 싶지 않다는 듯 쓰고 축축한 고해성사의 노래들로 가득 찬 이 영화 속 뮤지컬 장면들은 아름답지만 쾌감을 주진 않는다. 사랑 노래지만 '라라 랜드'가 아니고 둘이 추는 춤 같지만 사실은 아서의 독무인 무대들은 관객들을 달콤하게 유혹할 리 만무하다. 아서가 원했던 것이 돈과 명예가 아닌 사랑이라는 것이 하지만 그 사랑이 그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를 더 쓸쓸하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거짓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진짜로 미쳐버린 악당에게 환호를 아끼지 않고 영웅의 작위를 내려줬던 이들은 그 악당이 민낯을 고수하는 순간 차갑게 식어 버리고 뜨겁게 분노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비단 이 영화에서만 본 것이 아니다. 돈을 던지다 돌을 던지는 일이 아무렇지 않는 세상에서 영웅의 반대말은 악당이 아니라 실체일지도 모른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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