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힘들고 지루했다. 여느 때와 다른 무더위로 밤잠을 설치고, 하던 일도 뜻대로 되지 않아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하루하루 버티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기사를 보니 내가 상을 받은 것처럼 뿌듯하고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도 생겨서 그동안의 고단함이 해소되는 것 같았다.
며칠 후 노벨 경제학상이 발표됐다. 이번에 수상한 노벨 경제학자들은 제임스 로빈슨, 대론 아제모을루, 사이먼 존슨 교수로 국가 간 부의 불평등 요인을 밝혔다. 이들은 다수에게 더 많은 정치·경제적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를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s), 소수 엘리트에게 권한이 집중된 제도를 착취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라고 하며, 민주주의, 재산권 보장 등 포용적 제도가 경제발전 및 국가의 부를 향상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했다.
국가 간 부의 불균형은 지리, 기후, 종교, 문화 차이 때문이라는 연구가 많았지만, 이번 연구는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예로 유럽인들이 식민지 개척 당시, 원주민의 자원과 인구를 더 착취할수록 식민지의 경제발전이 둔화됐지만, 식민지를 덜 착취할수록 장기적으로 식민지 국가가 발전했다고 한다. 또한 미국 애리조나주의 노갈래스는 재산권이 보장되고 부유하며 평균 수명이 긴 반면, 멕시코 소노라주의 노갈래스는 범죄와 가난이 범람하는 도시이다. 이 둘은 역사적으로 같은 멕시코에 속해 있어 음식, 문화, 기후, 지리적 차이가 거의 없지만 미국의 포용적이고 자유로운 정치·경제 시스템이 멕시코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포용적 제도는 단순히 이뤄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력과 행동이 이뤄 낸 결실이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서는 오늘날 사람들이 알고리즘과 구독에 갇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점을 비판하며, 구경하는 시선에서 멈추지 말고 행동하기를 요청한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가를 구성하는 조직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닌 개인의 자유와 권리, 의사가 존중되는 사회나 조직이 필요하다.
경쟁이 심화하고 불확실한 시기에 기업은 강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원할 수 있다. 강력한 리더십은 두려움이 아닌, 존경과 사랑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리더가 나를 지켜줄 수 있고 안전함을 느낄 때 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창발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조직의 성과는 직원이 만든다. 고객 만족은 직원 만족이 우선이다.
진정한 위계와 질서는 상명하복의 강압적 복종이 아니라, 내 일을 사랑하고 내 성과가 리더의 성과라고 생각해, 리더를 돕고, 조직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올 때 생긴다. 부드럽고 포용적인 카리스마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포용적 제도가 뒷받침되는 사회에서 또 다른'한강의 기적'을 기대해 본다. <주현정 제주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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