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제주는 겨울에도 쉼 없이 돌아간다. 감귤 수확 농번기이기 때문이다. 농번기에는 농민들이 바빠 병원을 찾기 어려워지지만, 유독 늘어나는 환자 부류가 있다. 바로 귤을 따다가 나뭇가지나 나뭇잎에 눈을 찔려 병원을 찾는 외상 환자들이다. 하루 이틀 쉬고 저절로 낫는다면 다행이겠지만, 눈에 상처가 난 채 농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감염이 생겨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가장 흔한 경우는 각막에 상처가 생긴 뒤 세균에 감염돼 각막염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항생제 안약으로 대부분 치료가 가능하지만, 일반 항생제에 반응하지 않는 감염은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가장 까다로운 경우가 곰팡이 감염이다.
곰팡이 각막염(진균성 각막염)은 드문 질환이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면 시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 초기에는 세균성 각막염과 증상이 비슷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각막에 하얗게 깃털 모양이나 솜털 모양의 염증 침윤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주요 원인균으로는 아스페르길루스(Aspergillus)와 푸사리움(Fusarium) 같은 곰팡이균을 든다.
아스페르길루스는 전 세계적으로 토양, 식물, 썩은 유기물, 건축 자재 등에서 흔히 발견되는 곰팡이로, 공기 중에 떠다니는 포자를 흡입하거나 상처를 통해 체내에 유입되면 폐렴, 부비동염, 각막염 등의 감염을 일으킨다. 푸사리움은 식물성 곰팡이로 따뜻하고 습한 환경에서 잘 자라며, 농업 지역이나 열대 및 아열대 기후에서 흔히 발견되는데, 면역력이 약해진 경우 전신 푸사리움증으로 악화될 수 있다.
곰팡이 감염이 의심되면 KOH(칼륨 수산화) 검사를 통해 각막에서 채취한 샘플로 곰팡이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배양 검사를 통해 균종을 더 정확히 파악하기도 하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 몇 주가 걸릴 수 있어 일반적으로는 검사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치료를 시작한다.
치료 약제로는 나타마이신(natamycin) 안약이 1차 치료제로 권장된다. 다만 한국에서는 한국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서만 구할 수 있고 매우 고가이기 때문에, 실무에서는 암포테리신(amphotericin)이나 보리코나졸(voriconazole) 같은 항진균 주사제를 안약으로 조제해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필요에 따라 전신적인 항진균제를 주사제나 경구제로 투여하기도 한다.
약물 치료로 호전되지 않는 경우에는 각막이식술과 같은 수술적 치료를 고려한다. 그러나 곰팡이 감염의 예후는 대체로 좋지 않다. 치료 후에도 각막에 혼탁이 심하게 남아 시력 저하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예방이다.
농작업이나 야외 활동 중에는 눈에 흙이나 나뭇가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고, 고글이나 보호용 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콘택트렌즈를 사용하는 경우 철저한 위생 관리와 적정 착용 시간 준수가 필수다. 만일 사고가 발생했다면, 바쁘더라도 즉시 안과를 방문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지 말자.' 진료실에서 더욱 절실히 느끼곤 하는 삶의 지혜다. <김연덕 제주성모안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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