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신구간을 맞으며

[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신구간을 맞으며
  • 입력 : 2025. 01.22(수) 02:3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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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제주는 이달 25일 고유의 풍습인 '신구간'을 맞는다. 이번 신구간은 설이 들어있고 마지막 하루를 빼고 모두 휴일이다. 대한 5일 후부터 입춘 3일 전까지라는 이 기간에 예전 시골에선, 요즘 주로 하는 이사 외에 집안과 돌담 울타리 손질, 돼지우리와 외양간, 헛간 손보는 일들을 했다. 이때는 인간 세상을 관장하는 묵은해와 새해의 신들이 임무를 교대하느라 자리를 비워서, 택일하지 않고 공사를 해도 부정 타지 않는다고 했다.

'신구간'에서 근면하고 지혜로웠던 제주 선인들의 삶을 유추해 본다. 그들은 척박한 풍토와 어려운 여건에서 농사일에 부대끼느라 평소 밭일 외에는 손을 쓸 엄두를 못 냈다. 그래서 대소한이 지난 농한기에 그동안 미루었던 집일들에 일손을 보태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했다. 기온이 낮아서 병원균이나 해충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도 덜었다. 그들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스스로 '동티'의 굴레를 정해 매사에 신중했던 거다.

올 신구간을 맞으며 생각이 많다. 120년 전 을사년은 '을씨년스럽다'의 어원이 된 해다. 그 참담한 을미사변을 겪고 나서 10년이 지난 때였다. 그해 나라 안 분위기는 얼마나 암울하고 스산했을까. 대한제국은 그로부터 5년 후 국권이 피탈됐다. 그러나 을사년이라고 해서 절망만 하지는 말자.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1545년 을사년 생이다. 2025라는 수도 좋은 징조 같다. 2025는 45의 제곱수이며, 1에서부터 9까지 숫자를 각각 세제곱해 합산한 수다. 이런 수리는 매우 드문 예다.

뱀은 좋은 이미지도 갖고 있다. 뱀은 예전 제주에서 집안을 지키는 영물로 신성시됐었다. 모든 게 부족했던 시절이라, 집안의 곡식을 축내는 쥐를 퇴치하는 존재라서 민간에서 재물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섬겨졌을지 모른다. 뱀은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고 여러 곳을 다니며, 한 번에 10여 개의 알을 낳는다. 그래서 강한 생명력과 풍요로움, 지혜와 영생불사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의학 분야의 표지로도 쓰인다. 그리스 신화의 '의료ㆍ의술의 신'이 든 지팡이와 세계보건기구의 문장에 뱀이 등장한다.

2025년은 대한민국이 뱀의 기운을 받아서 망국적인 병폐를 치유하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신구간이 됐으면 좋겠다. 정치꾼들이 사리사욕을 우국충정으로 포장해 국민을 우롱하고, 법치를 무시하면서 악성 여론을 조장하고 선동하는 작태가 나라를 나락으로 몰고 있다. 2024년 교수사회가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도량발호'였다. 이는 '살쾡이가 들보를 밟고 이리저리 날뛴다'는 뜻으로, 권력과 세력이 제멋대로 설치며 사회적 질서를 무너뜨리고 정의를 왜곡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 표현의 대상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필자는 다만 천심을 어기는 일과 사악한 자들이 동티의 형벌로 엄히 징치되고 정의로운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랄 뿐이다. 차마 또다시 을씨년일까. <이종실 제주문화원 부원장·수필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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