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필자가 하는 연구 중에 '사회인지'라는 분야가 있다. 워낙 연구가 많이 돼 있지 않은 분야라 그런지 우리가 내놓는 연구 결과들을 사람들이 흥미롭게 받아들여 주는 것 같다.
사회인지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지 기능, 즉 기억력, 집중력 같은 기능의 한 줄기로, 우리가 사회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능을 가리킨다. 예를 들자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려면 상대방이 하는 말을 해석하는 언어 기능도 필요하지만, 그 상대방이 화가 나 있는지, 기뻐하고 있는지, 빨리 자신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길 바라며 초조해하고 있는지 같은 타인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해석하는 능력 또한 필요하다. 이게 사회인지 기능이다. 또한, 어떤 행동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어떤 행동은 그렇지 않은지 이해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밥상머리에서 코를 후비는 행동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자제할 줄 아는 것도 사회인지 기능의 하나다.
그렇다면 사회인지 기능이 좋은 사람이 친구도 많을까?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외로움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는 '좋은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본 칼럼을 통해 소개한 적이 있다. 믿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이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행복하더라는 연구 결과가 있을 뿐 아니라, 외롭다는 감정은 그 자체로도 여러 가지 건강 인자에 영향을 미쳐서 우울, 불안과 관련이 있고, 치매, 심혈관계 질환의 확률을 높이는데 그 해로운 정도가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이나 나쁘다고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누가 외롭지 않은지, 누가 좋은 인간관계를 잘 맺는지를 알아봐야 우리가 행복해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의문에서 출발한 연구를 최근에 완성했는데 예측과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해석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인간관계의 수가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관련이 없었다. 그 대신 사회적으로 적절한 행동과 부적절한 행동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관계의 양과 질에 모두 영향을 미쳤다. 해석해 보자면, 내가 남의 마음을 눈치 빠르게 헤아리고 공감하는 세련된 능력까지는 갖추지 못하더라도, 대충 정상에서 크게 벗어난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충분히 지인 내지는 친구로 받아들여 준다는 말이다. 이 연구는 미국 내 특정 지역(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근처의 자그마한 마을들)에서 모은 자료를 사용했다. 인구의 이동이 많고 짧은 관계가 많은 대도시에서라면 결과가 달랐을 수 있다.
여러 가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도 이 결과는 왜인지 좀 더 마음에 남았다. 내가 대단한 조건을 갖춘 것도 아닌데 그저 너그러이 친구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들, 어린 시절부터 함께 보낸 제주 친구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회인지나 좋은 인간관계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더라는 것, 우리는 서로에게 생각보다 너그럽다는 걸 한라일보 독자들께도 전하고 싶다. <이소영 하버드대 매스제너럴브리검 정신과 교수>
■기사제보▷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