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제주 미술계에서 작가와 기관, 공간은 비교적 눈에 띄지만, 이들을 연결하고 맥락을 만드는 기획자의 수는 현저히 적다. 자연히 담론의 장도 부재하다.
스튜디오126이 2024년부터 '큐레토리얼 워크숍'을 시작한 것은 바로 이 공백에서 출발한다. 누군가는 묻고, 질문을 모으고, 기록을 만들며, 현장을 다시 엮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국내 미술계에서 대안공간과 독립 기획은 지속적으로 등장해 왔다. 이들은 동시대 미술의 실험성과 현장성을 유지하는 핵심 축이다. 그러나 제도권 기관과 달리 구조적 기반이 약해, 많은 시도들이 사라지는 속도 또한 빠르다. 전시가 끝나면 과정에 대한 기록은 문서화되지 못한 채 소멸한다. 지역 전시사에서 독립적 실천이 누락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큐레토리얼 워크숍'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응답이었다. 2024년의 워크숍이 제주 미술 환경을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시간이었다면, 2025년의 워크숍은 보다 선명하게 '기록'과 '전시사'를 향해 나아갔다.
우리는 그동안 제주에서 이루어진 대안적 전시 실천을 다시 수집했고, 국내외의 아카이브 구축 사례를 비교하며 제주에 적합한 방식이 무엇인지 논의했다. "무엇을 어떻게 기록해야 지속될 수 있는가", "독립 기획의 기억 구조는 어떤 형태로 가능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세 차례의 워크숍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였다.
흥미로운 점은,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던 실천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오래 고민하던 문제들이 집단적 언어로 번역되었다. 지역의 기획 생태계가 작동하려면 결국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에서 '무엇이 공유되고 있는가'로 나아가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것은 단순한 자료 축적 성격의 아카이브가 아니다. 지역에서 기획을 한다는 행위 자체를 다시 한 번 묻고, 그 근거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제주에 남겨지지 못했던 전시의 기억 구조를 만들고, 다음 세대 기획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토대를 다지는 일. 그것이 '큐레토리얼 워크숍'이 바라보는 '미래의 지역성'이다.
사업을 마무리하며 가장 크게 남는 생각은 이것이다. 지역 기획자들이 서로의 경험을 안전하게 나누고 논의할 수 있는 자리는 필수 조건이었다는 것. 기획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며, 현장은 결국 관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 워크숍이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꾸준히 이어지는 네트워크이자 담론의 장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제주에서의 실천이 각자의 고립된 '사건'으로 사라지지 않고, 축적되고, 연결되고, 다시 다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그 시작을 기록하고 있다. <권주희 스튜디오126 대표·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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