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최근 서울 소재 모 대학의 중간고사에서 일부 학생들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시험을 치렀다는 뉴스가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대학과 고교에서도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는 '시험과 수행평가에서 AI 사용을 허락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를 넘어 이제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와 '인간의 존재 의미'를 다시금 질문한다.
근대의 합리주의와 실용주의는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통해 작금의 편리하고 효율적인 세상을 가져왔다. 생각해보면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의 발달은 종국에는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기에 백여 년 전부터 눈 밝은 예술가들의 공상과학 소설과 영화에 인간을 닮은 기계들이 등장한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 언어의 통계적 패턴을 매우 정교하게 모사한다. 또한, 실제 감각을 느끼지는 못하나 이미지 정보, 화학 성분과 농도, 압력과 진동 등을 통해 감각을 예측한다. 언어, 이미지 그리고 그 밖의 데이터들로부터 감정도 모방한다. 그래서 결국, 언어와 이미지라는 기호, 나아가 데이터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담을 수 있을까?
난무하는 예측들과 막연한 두려움 중에도 사람들은 벌써 AI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이미 일상적으로 AI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다. 인간의 지능은 AI를 통해 확장되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도 있다. 인간이 머리로만 살다 보니 감정조절력, 공감, 모호함과 지루함을 사는 힘, 깊고 지속적으로 관계 맺는 능력은 퇴행하거나 오작동한다. 몸은 소외되고 사랑이 가벼워진다. 더 빠르게 더 많은 것을 하고, 이전에 못하던 것도 하게 됐지만, 행복하지 않다. 뜬금없이 눈물이 나고, 어느 순간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오며, 때로 화가 치솟는다. 갑자기 어지럽고 메스꺼워지며, 문득 죽고 싶어진다.
어쩌면 논리와 분석으로 문제를 해결해 온 방식이 사실은 파국적인 진짜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과 세상은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품어야 할 질문이기에.
둘러보면 이성의 태양이 밝게 빛날수록 그림자도 짙게 덮인다. 분리, 고립, 공허, 두려움, 분노, 절망의 어둠이 우리를 잠식한다. 번쩍거리는 세상 뒤편에선 조용한 비명들이 넘쳐나고 도처에서 사이렌이 울린다. 경찰, 법원, 정신건강의학과와 상담센터는 언제나 문전성시다. 염증이 곪아 부풀어 터져야 새살이 돋아나듯, 이성의 극단까지 도달해야 새 길과 새 세상이 열리는 것일까?
무엇이든 답을 내는 AI와 살아갈 우리는 질문을 던질 뿐 아니라 질문을 살아가는 존재여야 한다. 섣불리 답을 내기보다 질문에 머물고, 몸과 함께 살아가며, 시비를 가리는 논객이 아니라 생각 너머를 드나드는 모호한 시인이 돼야 한다.
알 수 없음의 연약한 자리에서만 우리는 타자에게 가닿을 수 있다. 거기서 사랑이 피어오른다. 부디 우리가 그 좁고 충만한 인간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신윤경 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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