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최근, 2년 전 신문에 실린 내 글을 읽고 나를 수소문해 찾아온 아흔을 넘긴 서예가 현수언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흐뭇한 모습으로 부채 하나를 내미셨다. 그 위에는 단정하면서도 오래 눈길이 머무는 글씨로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
그 부채를 받아 드는 순간, 글이 사람에게 건너가는 방식과 그 무게를 새삼 실감했다. 내가 쓴 문장이 누군가의 시간을 건너 마음에 닿았고, 그분은 그 문장을 다시 자신의 손으로 써 나에게 건네줬다. 글은 그렇게 사람을 만나 돌아오고, 사람은 그 글이 남긴 만큼의 책임을 떠안는다. 요즘 들어 내가 쓰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삶에 오래 남을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이전보다 더 조심스러워진다.
학생맞춤통합지원을 둘러싼 논쟁을 바라보는 마음은 요즘 더 무겁게 다가온다. 제도의 취지와 달리 일부 장면이 단편적으로 전해지며, 학교 현장의 부담과 역할을 둘러싼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교사에게 과도한 책임이 전가되는 구조가 아니냐는 문제 제기와 함께, 제도 시행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그러나 이는 제도를 거부하기 위한 반대라기보다, 현장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해 제대로 준비해 달라는 요청에 가깝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 본질을 다시 물어야 한다. 학생맞춤통합지원은 교사나 교육복지사 등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일을 더하자는 제도가 아니다. 위기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고, 그가 겪는 학습·정서·경제적 어려움을 학교 혼자 떠안던 구조에서 벗어나, 학교 구성원과 교육청,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을 나누기 위한 체계를 만들자는 취지다. 한 사람의 헌신에 기대는 방식이 아니라,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나누는 구조로 전환하자는 제안이다. 이는 무엇을 더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누구의 몫으로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교육과 복지를 인위적으로 나누는 것 또한 이 논의의 본질은 아니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학생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다만 그 이해가 개인의 희생이나 헌신으로 오해될 때, 제도는 왜곡되고 현장은 쉽게 소진된다.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구조와 역할이 정리되지 않은 채 업무만 더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바랐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연말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이 밤, 현수언 선생님이 건네준 부채를 다시 떠올린다. 오래 꿈을 꾼다는 것은 거창한 이상을 말하는 일이 아니라, 말과 행동의 방향을 오래도록 지켜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학생맞춤통합지원 역시 누군가의 헌신을 미화하는 이름이 아니라, 교육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이 차분히 공유되기를 바란다. 글이 사람을 닮아가듯, 제도 또한 우리가 오래 품어온 꿈의 방향을 닮아가기를 소망한다. <오지선 서귀포시교육지원청 교육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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