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의 하루를 시작하며] ‘기억의 암살자’와 우리 안의 파시즘

[김동현의 하루를 시작하며] ‘기억의 암살자’와 우리 안의 파시즘
  • 입력 : 2026. 05.20(수) 03:00
  • 김동현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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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박진경 추도비를 둘러싼 일련의 논쟁은, 4·3이 결코 '완료된 과거'가 아니라는 사실임을 일깨운다. 극우 서사를 유포하는 매체와 유튜버들은 그를 '대한민국 건국의 숭고한 희생자'로 다시 호명하기 시작했다. "독립을 위해 제주도민 30만명을 싹 쓸어버려도 좋다"던 박멸의 논리, 도민을 '공산주의 독균의 감염자'로 지목함으로써 학살의 알리바이를 마련했던 그 언어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이다.

이들의 언어는 우리 사회 내부의 동조 구조 위에서 비로소 작동한다. 진상이 이미 밝혀졌음에도 국가주의와 반공의 알리바이를 앞세워 타자를 배제하고 학살을 정당화해 온 '우리 안의 파시즘'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 안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기억의 암살자'들이 겨냥하는 자리가 바로 그곳이다. 그들은 사실과 허구를 동등한 무게로 마주 세움으로써 4·3을 끝내 '논쟁의 진흙탕'으로 끌어내리려 한다.

6월 지방선거 이후의 정국은 4·3의 기억 투쟁이 그 예각을 다시 한번 벼려내야 할 결정적 분수령이다. 재편될 정치 지형 속에서 4·3 담론은 또다시 정치적 타협의 대상으로 전락하거나, 극우의 전면적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므로 4·3을 '지역적 비극'의 프레임이나 '시혜적 과거사 청산'의 어휘 속에 가두는 일은 이제 단호히 거부돼야 한다. 국가폭력에 맞서는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로 제주 4·3의 역사를 다시 벼려내야 한다.

그 핵심은 진상규명 이후에도 여전히 기억의 외부에 존재하는 '이름'들이다. 아직도 냉전과 반공의 철창 속에 갇혀 있는 미인정 희생자들은 여전히 '부르지 못하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4·3 특별법 제정과 대통령의 사과로 외형적 제도화는 일정한 진전을 이뤘으나, 우리의 '기억의 영토'는 여전히 반공주의의 구도 속에서 왜소화 되고 있다. 2001년 헌법재판소가 내놓은 부대의견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 간부나 무장유격대 지휘관 등은 희생자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지금도 강력한 배제의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당시의 혼돈 속에서 생존을 위해, 혹은 강요에 떠밀려 산으로 가야 했던 수많은 이들이 그 법적 굴레 안에서 여전히 '기억의 외부'로 밀려나 있다. 가해자의 책임은 끝내 묻지 않으면서 피해자에게만 이념적 순결성을 요구하는 이 비대칭이야말로, 우리의 기억이 여전히 미완임을 증거하는 자리에 다름 아니다.

이 은폐된 자리를 정면으로 돌파해야 하는 주체가 바로 '포스트 메모리(post-memory) 세대'다.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되 세대 간 전이를 통해 4·3을 자기 안의 기억으로 떠안은 이들에게는, 감정적 추모를 넘어 객관적 사료와 보편적 인권의 시선으로 왜곡된 서사를 해체해야 할 역사적 책무가 있다.

'기억의 암살자'들이 끝내 노리는 것은 침묵과 피로감이다. 사실이 사실로서의 권위를 잃고 끝없는 '논쟁'의 구도로 도구화되는 것. 극우의 전략은 바로 그것이다. 특별법 제정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부르지 못한 이름들'이 남아있는 한 제주 4·3은 늘 현재적 과제일 수밖에 없다. <김동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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