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철의 월요논단] 고운 밥과 잡곡의 세월

[문종철의 월요논단] 고운 밥과 잡곡의 세월
  • 입력 : 2026. 07.20(월) 01:00  수정 : 2026. 07. 20(월) 07:33
  • 문종철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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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제주는 예부터 쌀이 귀했다. 토지가 논농사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주도 전 지역에서 논농사가 불가하지는 않았다. 대정현(현 서귀포 서쪽 지역)에서 적게나마 벼농사를 지었고, 정의현(현 서귀포 동쪽 지역)에서 그보다 더욱 적게 지었다. 제주목(현 제주시)에서는 매우 희박하게 논농사를 지었다. 논농사가 되는 땅이 너무 적었기에 제주에서는 논벼보다는 주로 밭벼를 키웠다. 이렇게 해도 벼를 키울 수 있는 땅이 모자랐기 때문에 쌀을 주식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제주도민의 주식은 잡곡이었다. 보리밥, 조밥, 메밀범벅, 감저뻿데기 등이 그것이다. 쌀밥은 제사상에나 구경할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렇기에 사투리로 쌀밥을 '곤밥', 고운 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벼농사가 거의 불가한 것을 제외하면 제주도도 육지와 마찬가지로 이모작을 했다. 보통 보리, 조를 번갈아 심었다. 제주도민의 삶에서 보리와 조는 중요한 곡식이었다. 보리쌀로는 밥을 지어먹었다. 만약 보리밥이 쉬었으면 거기에 누룩을 섞어 발효해 쉰다리를 만들어 먹었다. 감주(식혜) 또한 제주는 보리나 조로 만들어 먹었다.

좁쌀로는 밥도 지어먹지만 가루를 내 떡을 해 먹었다. 오메기떡이라고 하는데 제주에서는 오메기떡에 누룩을 넣어 술을 빚기도 했다. 만든 술을 고소리(소줏고리)에 내리면 소주가 나오는데 이를 고소리주라고 한다. 제주에서는 좁쌀로 '강술'이라고 하는 고체 술을 만들어 필요할 때마다 물에 개어 마셨다. 이렇듯 제주에서는 술을 빚을 때 조를 사용했다. 이렇게 빚은 술마저 귀하게 여겨 잔치나 제사상에 올릴 정도였다.

조는 농사짓기 힘든 곡물이다. 물론 농사라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마는 보리농사에 비해 조 농사는 더욱 힘들다. 보리는 가을에 심어 겨울을 나 봄에 수확하지만 조는 여름에 재배하기 때문이다. 조 파종을 6월에 하는데 파종하고 나서 크게 비가 오면 '검질(김)'만 무럭무럭 자라 농사가 망한다. 파종할 때에도 마소를 이용해 땅을 다지는데 그러지 않으면 흙이 물을 머금지 못해 씨앗이 발아하기 힘들다.

파종을 잘 끝마쳤다면 제일 힘든 일이 기다린다. 바로 김매기다. 김은 통상 4번 정도 매는데 대개는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맨다고 보면 된다. 그렇지만 김을 한여름에 매기 때문에 조 농사를 지어 본 사람이라면 으레 더워서 김매기 때문에 힘들었다고 입 모아 말한다.

이렇게 조와 보리는 제주도민들의 주식이자 가난의 상징이었던 주곡이었으나 현대에는 위상이 사뭇 달라졌다. 재배하기 어려워 귀하게 여겼던 쌀은 흔해져서 도민 누구나 먹을 수 있게 됐고 오히려 같은 무게 대비 잡곡값이 비싸져서 먹기 곤란해졌다. 되레 잡곡은 건강식품으로 선호받는 시대가 됐다. 아마 사오십 년 전으로 돌아가 미래에는 잡곡이 귀해지고 쌀이 헐해진다고 말한다면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람의 삶도 달라지는데 그 변화의 방향이나 정도가 가늠하기 힘들 지경이다. <문종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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