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새 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가정통신문을 손에 들고 시력 검사하러 오는 아이들로 병원이 북적인다. 안타깝게도 그 중 상당수는 근시로 진단돼 안경을 쓰게 된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휴대전화, 또는 아이패드를 붙들고 뽀로로와 함께 노는 게 제일 좋았던 어린이들의 불가피한 성장 경로다. 현대 인류에게는 안경과 렌즈, 라식, 라섹 등 다양한 후처치까지가 진화과정인 것처럼 보인다.
요즘 세상에 안경 안 쓰는 아이가 드문 것 같아도, 맨 처음 처방을 받아 들면 마음 상해 보이는 부모도 꽤 많다. 아이들 건강 관리를 잘못한 것 같아 자책도 들고, 장차 미모가 상할까 봐 속상해서다. 더구나 요즘 같은 고물가에 안경 값은 또 얼마나 비싼지. 조금 멋이라도 부릴라치면, 어지간한 액세서리 사치보다 더한 것이 안경이다. 무엇보다 근시도 비가역적이다. 한 번 생기면 역으로 좋아지기 어렵고, 만 7세에서 10세 사이에 빠르게 진행돼 성장기 내내 이어질 수 있다.
근시는 눈의 앞뒤 길이인 안축장이 정상보다 길어지며 생긴다. 한번 길어진 안축장은 다시 짧아지지 않고, 길어질수록 망막과 맥락막이 얇게 늘어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고도근시에서는 망막박리 위험이 근시가 없는 사람보다 약 10배까지 높아질 수 있다. 미국안과학회는 고도근시 환자 약 20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은 망막박리를 겪는 것으로 본다. 무시하기 어려운 수치다. 근시성 황반변성 위험도 도수가 높아질수록 가파르게 오른다. 그래서 소아 근시 치료의 목표는 안경 도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안축장이 자라는 속도를 늦춰 평생의 시력 손상 위험을 줄이는 데 있다. 미래의 눈을 지키는 예방의학인 셈이다.
근시 진행을 늦추는 데는, 저농도 아트로핀 점안, 드림렌즈, 마이사이트 소프트 콘택트렌즈, 근시 억제 안경 등 크게 네 가지 방법이 제안돼 왔다. 이 지면에선 그 가운데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연구된 아트로핀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아트로핀은 본래 동공을 키우고 조절을 마비시키는 목적의 약이다. 안과에서는 아이들의 안경도수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조절마비굴절검사에 오랜 기간 사용해 왔다. 그런데 이 아트로핀을 낮은 농도로 꾸준히 넣으면 안축장 성장을 억제해 근시 진행을 늦춘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로 확인됐다. 하루 한번 넣으면 되니 비교적 순응도가 높고, 렌즈를 넣기 어려운 어린아이에게도 쓸 수 있다.
아트로핀 연구는 강한 고농도 투여에서 균형 잡힌 저농도로 발전해 왔다. 싱가포르의 ATOM 연구에서 1% 고농도 적용 시 효과는 즉각적이었지만, 눈부심, 근거리 시력 저하, 중단 후 근시가 다시 빨라지는 리바운드가 문제였다. 이후 홍콩 중문대는 LAMP 연구를 통해 0.05%, 0.025%, 0.01% 투여시 효과를 비교했는데, 0.05%가 효과와 부작용의 균형 면에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국내에서 근시억제로 널리 처방되는 제품은 0.125%로 다소 진하다. 연구용 농도와 국내에 허가·유통되는 완제품의 농도가 반드시 같지는 않은 탓이다. 국내 소아 연구에서 0.125%는 안축장 증가를 대조군보다 절반 가량 줄였다. 산동 목적으로 허가 받은 0.05% 점안액도 임상에서 무리 없이 쓰인다. 물론 완벽한 약이란 없어서, 농도가 높을수록 눈부심이나 근거리 시력 저하가 생길 수 있고 드물게 알레르기 반응도 나타난다. 효과와 부작용이 모두 농도를 따라가는 만큼, 나이와 진행 속도, 안축장 변화를 보며 정기 검사와 상담을 통해 맞춤 안약을 찾아야 한다.
애비가 안과의사지만 필자의 두 아들 모두 고도근시로 안경을 쓰게 됐다. 첫 안경을 씌우고 어찌나 속이 쓰리던지. 큰 아이 때 눈에 넣고 자면서 시력을 지켜주는 드림렌즈를 시도해 봤었다. 오죽 꿈같았으면 이름이 '드림' 렌즈였다. 그런데 이물감이 심한 탓에 아이는 울며 불며 착용을 거부했다. 유독 눈이 작아서 한 번 넣을 때마다 굿거리 장단을 쳐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요새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눈 한 번 깜빡 않고 커다란 눈에 각종 컬러 렌즈를 넣고 빼는 모습을 장기자랑처럼 보여주던데, 그런 친구들은 모르는 일반인들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한참 터울이 지는 둘째 아이 때는 드림렌즈 착용감이 많이 개선돼 아이 친구들은 상당수 근시를 늦추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고집 센 둘째는 끝내 렌즈를 거부해 아트로핀 점안으로 방향을 바꿔야 했다. 이마저도 아이의 불규칙한 기숙 생활로 규칙적인 점안에 실패해, 결국 두 녀석은 안경을 써야 그나마 봐줄만한 쪽으로 진화하고 말았다.
근시는 되돌릴 수 없지만 속도는 늦출 수 있다. 하루 두 시간 이상의 야외활동과 바른 근거리 습관, 정기 검진이 기본이다. 의사 아빠도 실패한 일이니 너무 자책하지 마시고, 더 나빠지기 전에 가까운 안과를 찾아 전문의와 상의해 보시라. <김연덕 제주성모안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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