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올여름 제주는 큰비가 내리던 장마와 달리 비가 내리지 않는 마른장마를 지나며 무더위 기간이 길어졌다. 이제 본격적인 무더위와 휴가철이 시작되며 사람들은 휴가 기간에 해외로 떠나거나 호텔이나 리조트에 묵으며 소위 '호캉스'를 보내고, 자동차로 명승지를 찾아 캠핑을 즐기며, 떠날 입장이 되지 못한 이들은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서 홈캉스를 하며 더위를 피한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더위를 대처하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우리 선조들은 여름을 단순히 무더위를 견디는 계절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말이 바로 '피서(避暑)'다. 이는 더위를 피한다는 뜻을 넘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표현이다. 조선시대에는 유람, 청유, 납량, 탁족, 천렵 같은 표현도 사용했다. 특히 납량(納凉)은 서늘한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자연의 시원함을 몸과 마음에 채우는 지혜로운 여름 문화를 의미한다.
지역마다 피서 풍속도 다양했다. 산이 많은 강원과 영남에서는 계곡과 폭포를 찾아 발을 담그고 정자에서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고, 충청과 호남에서는 강가의 버드나무 그늘이나 모래톱에서 그물 던져 고기를 잡고 이웃과 음식을 나누며 더위를 식혔으며, 해안 지역 사람들은 시원한 해풍을 벗 삼아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제주의 피서 문화는 더욱 독특했다. 무더위가 시작되면 물이 솟는 계곡이나 용천수를 찾았는데 서귀포 지역은 돈내코와 소정방 폭포에서 물놀이와 보양식을 나누며 기력을 회복했고, 제주시의 방선문과 용연에서는 선비들이 배를 띄워 시를 읊었다. 산지천은 아이들과 여인들의 물놀이와 멱감는 장소였고, 삼양 바닷가의 검은 모래찜질은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는 믿음으로 많은 이들이 찾았다. 그 외에도 제주 전역에 산재된 용천수가 솟는 곳에서 흐르는 땀을 씻어 내고 체열을 식히기도 했다. 해녀들은 바다에서 물질하며 무더위를 이겨냈다. 제주의 주거지 또한 초가집과 현무암 돌담은 자연 바람을 활용한 훌륭한 냉방 장치였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모여들었던 마을 팽나무 그늘은 여름 사랑방이고 마을 공동체 의식을 키워주던 교육장이기도 했다. 주민들 간에는 "검불령 헙써"(땀 식히고 하세요)라고 인사하기도 했다.
삼복에는 보양식으로 기력을 보충하여, 다가올 농번기를 준비하는 재충전 시간으로 삼았다. 이렇듯 선조들의 피서는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지며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지혜가 담겨있는 것이다.
어느 때보다 무더움이 예상되는 올여름이다.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계곡을 찾아 발을 담그고 숲길이나 바닷가를 거닐며 자연이 주는 바람과 물소리, 파도가 만들어 내는 신선한 산소를 들이키며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며 이 땅을 살았던 선조들이 남긴 피서의 지혜도 익히고 건강도 증진시키면 좋겠다. <정구철 제주국제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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