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부산 정착… 청학시장서 해산물 팔며 현역 물질“유네스코 등재 기뻐… 해녀라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제주 바다는 여전히 그리워… 물질 70년 채우고 싶어”
[한라일보] 지난 8월 4일 부산광역시 영도구 청학시장 입구. 이순자 해녀(82)가 망시리(해산물을 담는 그물망)에서 성게를 집어 들더니 도마 위에서 능숙한 손질을 시작했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관심을 보이자 호미로 대야 속 해산물들을 가리키며 "와서 하나 삽서(사세요)! 이거 자연산 돌멍게, 해삼, 전복이라"라며 호객 행위도 했다.

자신의 해녀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순자 해녀. 장태봉기자

부산 영도구 앞바다. 장태봉기자
고향 제주를 떠나 부산에 정착한 지 50여 년이 흘렀지만 그의 말씨에는 여전히 제주도 사투리가 진하게 남아 있었다. 오전 물질을 마치고 청학시장에서 해산물을 판매하던 이순자 씨를 만나 68년간의 해녀 인생에 대해 물었다.
"학교를 계속 다녔어야 했는데…"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해녀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 씨는 중학교를 그만두고 물질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이 씨는 1944년 우도 비양동에서 태어났다. 해녀였던 그의 어머니는 출중한 물질 실력을 가져 해녀회장까지 맡았지만 자녀들에게는 물질 대신 공부를 권했다. 이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 씨는 곧바로 중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이 씨는 학교에 좀처럼 적응하기가 힘들었다고 전했다. 친한 친구들이 모두 학교 대신 물질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학교 갔다 오면 막 어두워져서 돌아왔어. 친구들은 바다에서 미역이랑 우뭇가사리 캐면서 돈 버는데"라며 "친구도 (학교에) 다녔으면 나도 가고 싶었을 건데. 친구들이 안 가니까 학교 가기가 싫었어"라고 했다.

우도바다. 비짓제주 제공
결국 부모님과 선생님의 만류에도 이 씨는 1학년을 마치지 않고 중퇴했다. 그렇게 15살에 해녀가 됐다. 이 씨는 공부를 그만둔 것을 뒤늦게 후회한다고 했다. 이 씨는 "다시 돌아가면 공부를 하고 싶다"며 "이렇게 힘든 물질 말고 공무원 생활을 해보면 어땠을까 싶다"고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우도에서 태어나 바다가 곧 놀이터였던 이 씨는 첫 물질을 "무서웠다"고 기억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바다에서 68년의 세월을 보냈다. "한 해 두 해 나이 들수록 바다에 익숙해졌어. 젊을 때는 비 오고 바람 불어도 매일 바다로 나갔어."
이 씨는 스물넷에 우도에서 결혼 하고, 그곳에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아 길렀다. 하지만 경제적인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고, 이 씨가 서른이 되던 해에 가족이 다 함께 부산으로 이주했다. 그곳에는 이 씨의 남동생이 장사를 하며 자리를 잡은 상태였고, 남편은 부산에서 배 타는 일을 하게 됐다.

해녀 동상이 있는 우도 바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
이 씨는 부산에서도 물질을 했다. "처음엔 물질할 생각이 없었어. 그런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물질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결국 다시 물질을 했지."
부산과 제주의 바다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70년 가까이 바다를 누비며 해산물들이 줄어드는 걸 크게 체감했다고 했다. 그는 "바다가 오염이 돼서 이제 물건(해산물)들이 없어. 점점 없어지고, 앞으로 계속 없어질 거 같다"며 "물건이 제일 많이 나올 때는 봄이다. 제주에는 돌멍게가 안 나오는데 부산에는 많다. 그거 빼고는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가만히 있으면 돈이 나오나…
몸이 허락하면 2년만 물질 더 하고파
이 씨는 인터뷰 도중에도 물질의 고단함을 여러 차례 토로했다. "너무 힘이 들어 아직도"라고 말하면서 해녀가 오랜 경험만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해녀 물질이 배워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 헤엄치는 건 배워서 할 수 있어도, 물에 들어가서 작업하는 것만큼은 힘들어."

취재기자와 자신의 해녀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순자 해녀. 장태봉기자
동시에 그는 청학 해녀회장직을 맡으며 해녀발전포럼에 참여하는 등 해녀문화를 알리고자 앞장서기도 했다. 해녀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는 2016년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던 순간을 꼽았다.
"등재됐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옛날에는 부산에서도 해녀라고 하면 얕봤어. 근데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돼서 어디 가면 떳떳하게 해녀라고 할 수 있게 됐지. 나라에서 고무옷도 나오고"
다만 해녀에 대한 처우에 관해선 부산과 제주를 비교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부산은 제주에 비하면 (해녀들이 받는 혜택이) 10분의 1도 안 된다"며 "제주는 은퇴하면 월에 50만원씩 주는데. 제주 같이 할라면 부산은 멀었다"고 했다.
갈수록 신규 해녀 유입이 줄어가는 현실에 대해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일이 너무 고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해녀는 목숨 걸고 하는 위험한 직업"이라며 "젊은 사람들한테 하라고 할 수 없지. 우리 세대나 고생하고 말지"라고 강조했다.
80세가 넘은 이 씨는 여전히 바다에 나가지만 고령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자녀들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 고향 제주 바다가 여전히 그립지만 그는 2년 더 물질을 하는 게 목표다. 2년 뒤면 그가 물질을 시작한 지 딱 70년이 된다. "몸이 허락만 하면 앞으로 2년만 더 하고 싶어. 일생을 바다에서 살았으니까. 물질하며 용돈 벌면서 손주들 용돈 주고 그런 낙으로 살고 싶어."
<특별취재팀=양유리 기자·장태봉 기자(사진·영상 촬영)>
■기사제보▷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