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따라 재미로 시작한 물질, 20살부터 전업 해녀로120명이던 해녀 이젠 30명 남짓… 60대 해녀는 젊은편“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 좋아… 해녀만한 일 또 없어”
[한라일보] "무레질(물질)한 덕분에 애들도 키우고, 돈에 구애도 안 받았어요. 해녀 된 걸 후회할 이유가 없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에서 물질을 하는 고인덕(66) 씨는 쾌활한 목소리로 자신의 해녀생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50년 가까이 바다를 누빈 해녀 고 씨는 자신의 직업을 "최고"라고 치켜세우며 자랑스러워했다.
1960년생인 고 씨의 고향은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다. 해녀였던 언니는 어린 시절 그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바다에서 물건을 잡아 돈을 버는 모습도 멋졌지만, 언니가 입은 물옷도 유독 예뻐 보였다. 물질에 대한 호기심이 그렇게 싹텄다.
"언니야들이 물건 해오는 거 보고 친구들한테 '우리도 해볼까?' 하다가 진짜 물질을 하기 시작했어요. 물질을 잘하지도 못할 때지만 언니가 집에서 미싱으로 만든 물옷이 너무 예뻐 보였어요."
물질은 17~18살쯤부터 시작했다. 애기해녀(신입해녀) 땐 주로 참고동이나 천초(우뭇가사리)를 잡았다. 물질에 익숙해지자 소라, 전복, 미역도 따게 됐다. 흥미로 시작한 물질은 20살 성인이 되자 어엿한 직업이 됐다. 제 손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자 해녀일에 돈 버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수입은 부모님께 드리고, 아이들과 동생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 먹이는 데 사용했다.

옛날 해녀생활을 들려주고 있는 고인덕 씨. 장태봉기자
고 씨는 27살에 포항 구룡포에 사는 제주 남자와 약혼했다. 바로 다음 해에 결혼식을 올렸고, 구룡포에 터를 잡았다. 그곳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3년간 물질을 쉬었다. 남편은 외항선 선원으로 일하며 2~3년에 한 번꼴로 집에 돌아올 만큼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아기 낳아 기르다 보니까 물질을 쉬었어요. 남편도 하지 말라고도 했고. 그런데 남편도 외국 나가서 없고 하니까 무레질이 그립더라고. 원래는 타지에서 오면 6개월 간 이 지역에 살아야 물질을 할 수가 있는데, 며느리들은 예외였어."
고 씨를 비롯한 포항 해녀들은 단체로 강원도 등지로 출향 물질에도 나섰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15명의 해녀가 차량 두 대에 나눠 타고 새벽길을 달렸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쯤 포항에서 출발해 7시쯤 강원도에 도착한다. 오전 8시부터 물질을 시작해 네 시간가량 작업을 하고 낮 12시~12시 30분쯤 뭍으로 나온다. 해녀들은 차 안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다시 포항으로 돌아왔다.
고 씨는 "구룡포 (어촌) 계장님한테 다른 지역에서 연락이 와요. 자기네 바당(바다)에 와서 작업해 달라고. 우리는 당시에 40대 젊을 때니까 연락이 많이 와서 이리저리 많이 댕겼어요"라며 "밥도 못 먹으면서 말똥성게도 잡고, 전복도 잡고 그랬지"라고 회상했다.
제주와 포항의 바다를 모두 경험한 고 씨는 두 곳의 차이도 상세히 설명했다. 고 씨는 "제주 바다는 수심이 깊어도 물이 파랗고 곱다. 위에서 보이면 물건이 다 보일 정도지만 경북은 물이 많이 어두운 편"이라며 "제주도 전복은 납작하면서 크고, 경북은 작지만 통통하다"고 했다.
큰돈은 못 벌어도 친구들이랑 같이 갈 수 있으니까… 바다에 가면 개운해
오랜 세월 바다를 오간 그에게도 요즘의 무더위는 버거웠다. 고 씨에게 작업을 하며 가장 힘든 점을 묻자 주저 없이 날씨를 꼽았다. 그는 "옛날에 무레질 할 때는 날이 이추룩(이렇게) 안 더웠어요. 이추룩 더웠으면 못 살았지"라고 강조했다.
또 최근 들어 부쩍 바다에 수산물이 줄었다고도 토로했다. 그 원인으로는 다이버들의 수산물 채취와 공장의 폐수 등을 지목했다.
"40년 전에 나 시집왔을 때만 해도 물건이 바리바리 했어요(많았어요). 그런데 다이버들 때문에 바다에 물량이 없어. 또 과메기 공장 같은 게 많이 들어서니까, 거기서 나온 물이 다 바다로 가버려서 바다가 오염이 많이 돼서 물건이 없어요."
바다 오염으로 해조류들이 크게 줄었다고도 했다. 고 씨는 "바다에 풀이 없어서 해산물들이 줄고 있다"며 "자연의 것이 다 우리 입에 들어가는 건데, (동네가) 발전해서 바다가 오염되는 게 해녀 입장에선 싫다"고 말했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40여 년 전 포항 구룡포 해녀들은 120명에 달했지만 현재는 30명 남짓이다. 예순을 넘긴 고 씨도 해녀들 사이에서는 젊은 축에 속한다. 그는 "옛날에 건너 온 제주 해녀들이 포항 해녀들한테 물질을 많이 알려줬다"며 "그 해녀들이 이젠 90살, 100살이 넘었다. 나이 들어서 몸이 아픈데도 물에 가는 걸 좋아하는 할매들이 있다"고 했다.
이처럼 해녀들에게 물질은 단순히 돈을 버는 일을 넘어서 오랫동안 이어온 생활이자 익숙한 일상이다. 고 씨도 날씨만 좋으면 여전히 열흘이고, 한 달이고 매일 같이 바다에 나간다. "큰돈은 못 벌어도 친구들이랑 같이 가니까. 바다에 물건이 많으면 그게 최고지. 빨리 잡아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해요. 물건이 없으면 온 바다를 댕기지."
다시 태어나도 해녀가 하고 싶냐는 질문에는 바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고된 물질이지만 바다에 가고 나면 "몸이 개운하다"고도했다.
"회사나 공장 다니면 쉬고 싶어도 눈치 보이고, 자식들 보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가 없잖아요. 근데 해녀 하면 내 행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 돈에 구애받지도 않고. 그 덕에 아직까지 아이들이랑 손주들 용돈도 줄 수 있지. 해녀같이 좋은 게 어딨는겨."
<특별취재팀=양유리 기자·장태봉 기자(사진·영상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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