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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28)제주목도성지도 (중)-화북진
정든 각시 안타까운 마음을 동풍이 알아주기나 할까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0. 09.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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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영주 11경 화북진
돌 나른 김정 화북포에서 객사
화북포로 추사 김정희도 내려




#인간사 잔혹한 게 어디 한둘이랴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변론'에서 아테나이인들에게 했던 말이다. 장인(匠人) 아닌 장인, 예술가 아닌 예술가, 학자 아닌 학자. 요즘처럼 쉽게 베껴 훌륭한 명사(名士)로 둔갑하는 시대, 결국 우리는 오늘도 그들의 소화 안 된 쓰레기 더미를 벗어나려는 희망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저들이 비열함을 피하려고도 않는 속성을 키워준 것도 설마, 지방 행정, 혹은 그것과 손잡은 학교 제도는 아니었을까?

제주목도성지도 화북진 영송정. 가나문화재단 소장

화북진성에 때 아닌 비가 간간이 흩뿌려진다. 우주만큼 영원한 것도 없고 시간이 가면 다 사라질 것들 앞에, 정체 모르게 내리는 스콜 같은 비야 어찌 역사에 관심이 있겠냐만 그래도 화북포(옛 별도포) 진성 아래 비를 피하면서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려본다. 얼굴도 모른 채 기록 한 줄로 상상하는 노봉(露峰) 김정(金, 1670~1737). 그는 화북 포구를 확장한 제주목사로 경상도 영주(榮州) 출신이다. 그는 1735년(영조 11) 1월, 제주목사 겸 호남방어사로 제수돼 4월 도임해 재임 중 파도를 막는 축항 공사에서 직접 돌을 져 나르면서 힘을 쏟아 쌓았으나 그간 공들여 쌓은 축항(築港)이 밤 사이에 긴 제방 바깥이 잘려나가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다시 제방을 쌓아 재임 2년 6개월의 공적 임무를 마치고 화북포를 떠나기 전, 안타깝게도 과로로 쓰러져 객사(客死)하는 비운을 맞는다. 그는 재임 시 우련당(友蓮堂)을 중건하고 학문을 일으키려고 삼천서당(三千書堂)을 창건하는 등 여러 업적이 있지만, 오늘 꼭 기억하려는 것은 그가 포구 안쪽에 선창(船滄(艙))을 쌓고 그 위에 영송정(迎送亭)을 지은 사실이다. 1737년(영조 13) 8월에, 몸소 포구를 쌓고 그 위에 영송정을 지었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정자지만 그 영송정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째는 공사선(公私船)을 점검하는 장소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지정(人間之情)의 희비(喜悲)를 나누던 상징적인 건물인 것이다. 영송(迎送)이란, 말 그대로 포구의 사연이 묻어나고 선창의 정감이 살아나는 용어이다. 가는 사람을 섭섭해 하고 오는 사람은 반가운 인연의 관문이 된 화북포의 순정(純情)이랄까. 일찍이 백호(白湖) 임재(林悌, 1549~1587)는 육지에서 수자리를 살러 온 원병(援兵)들의 사연을 알고 제주 여인들의 슬픈 풍경을 이곳 별도포에서 목격하면서 송별의 노래인 송랑곡과 영랑곡을 짓기도 했다.

백호는 떠나는 군인을 "절해고도에서 해를 넘긴 나그네"라 표현했고, 보내는 제주 여인에게는 "곱고 탐스러운 한 그루 복사꽃"이라 말했다. 각시의 안타까운 마음을 동풍이 알아주기나 할까 아랑곳 없이 님을 단 번에 보내버리니, 이별은 그리도 잔혹하기만 한 법이다.



#영주십일경의 화북진(禾北鎭)

'제주목도성지도'는 특이하게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영주십일경(瀛州十一景)이 되는데 이미 알려진 영주십경에다가 화북진 1경이 추가된 지도첩이다. 사실 이 '영주십일경'은 '영주십경'의 화법이나 스타일로 볼 때 하나의 패턴의 연속상에 있다. 관방지도(關防地圖)의 성격에다가 군현도(郡縣圖), 진경산수도(眞景山水圖)의 화법은 물론 기록화와 실용화라는 복합적인 요소가 결합된 제주화이다.

제주목도성지도 화북진 모습. 가나문화재단 소장

화북진의 개관을 거칠게나마 풀어보면, "제주목 동쪽 10리 거리에 있으며 왕래하는 배들을 대는 곳이다. 성 주위는 608척, 성안에 환풍정(喚風亭)이 있는데 목사나 서울 관리들이 이곳에서 바람을 기다린다. 성벽 위에는 망양대(望洋臺)가 있고 성 밖 수 백보 거리에 치별암(雉別岩)이 있으며, 바다를 마주한 해상에는 영송정이 있어 높고 낮은 관리들이 왕래 시 송별하거나 환영하는 곳이다. 이곳은 예전부터 누차 일명 별도포라 부르던 곳으로, 좌우 산기슭을 돌아서 바다를 끼고 안 선창(內船艙)과 바깥 선창이 있으며, 동쪽에는 연대(煙臺)가 있다. 매년 봄·여름·가을 바람이 좋을 때 상인들이 물건을 사러 와 서쪽 연안 깊숙이 배를 정박한다. 바다로 이어진 못에 설치한 나무다리가 드러나 있어 바다 섬 중 하나의 훌륭한 경치를 이룬다. 별도포는 한양 갈 때마다 자주 매번 방향이 달라지는데 해남이나 강진으로 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관문이다."

고려시대의 주요 포구로 명월포를 이용했으나 조선시대에는 주로 별도포나 조천포, 산지포를 이용했다. 육지 포구와 거리가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별도포에는 화북진성이 있고 이곳을 화북진이라고 하는데 1678년 겨울(숙종 4)에 제주목사 최관(崔寬, 1613~?)이 재임 중 쌓았다. 당시 석성의 둘레는 303보(步), 높이 11척, 동·서 두 문이 있고, 성안에 객사와 군기고가 있었다. 조방장 1명, 치총(雉摠) 2명, 방군(防軍) 92명, 사후선(伺候船) 1척이 있었다. 1699년(숙종 25)에 목사 남지훈(南致熏)이 객사인 환풍정을 지었다. 화북진은 이후 지도에는 '화북소(禾北所)'와 '화북진'으로 병행하여 표기됐다.

여지도(輿地圖) 중 '제주목(濟州牧)지도'(1698~1703), 해동지도(海東地圖) 중 '제주삼현도(濟州三縣圖)', 해동제국지도(海東諸國地圖) 중 '제주지도'(1700년대 말), 좌해분도(左海分圖) 중 '전라도 지도'(1700년대)에는 화북소로 표기돼 있으며, 화북진으로 표기한 지도는 '제주지도(濟州地圖)'(1700년대 전반), 이원조의 '탐라지도병지(耽羅地圖幷識)'(1841), '제주지도(濟州地圖)'(1872) 등이 있다. 또 '광여도 중 제주목 지도'(1800전반)에는 화북성 안에 제주에 행정 출장 오는 관리들이 묵는 '조선사신유관(朝鮮使臣留官)이라고 기록돼 있다.

현재의 화북진성과 화북포 모습.

'제주목도성지도' 성안의 건물로는 중대청(中大廳), 객사에 해당하는 환풍정(喚風亭), 집무보는 내아(內衙), 북성 위에 망양대((望洋臺)가 있고, 외선창 밖의 지명으로는 동쪽에는 연대, 북서쪽에는 깃대와 같은 계목(桂木)이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고, 남당머리(南堂頭)라는 지명이 써 있다. 멀리 작은 오름처럼 망동산(望童山) 아래 별도촌(別刀村)의 모습이 보인다.



#'제주목도성지도'의 제작 연대

화북진 지도를 보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영송정이다. 이 지도의 제작 연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영송정은 내선창 길목 맞은 편에 있으며, 1737년(영조 13) 8월 김정이 방파제 축조 후에 지어진 것이다. 또 이 영송정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2)가 1841년 부임 했을 시에 없었다는 것으로 보아 이 화북진 지도를 기점으로 삼으면 1737넌 8월 이후로부터 1841년 이전까지 약 104년 사이에 '제주목도성지도'가 그려진 것으로 보이니 아마도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초에 그려졌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탐라순력도 화북성조 부문 외성창 위에 그려진 건물.

그러나 또 한 가지 특기할 것이 있다면, 이 영송정이 '탐라순력도' 화북성조(禾北城操)에도 '제주목도성지도'의 자리에다 매우 유사한 건물이 그려졌다는 사실이 흥미로운데 이는 이형상 목사 재임기에도 당시 영송정이라는 이름은 아니겠지만 포구를 오가는 선박들의 출입 관리를 위해 비슷한 건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김정이 부임하여 포구의 방파제가 유실되면서 없어진 건물을 방파제 공사와 더불어 다시 축조하여 이름을 영송정이라고 지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화북포를 지났던 관리와 유배인들이 매우 많겠지만 선뜻 눈에 띄는 인물은 대정현 유배인 묵재(默齋) 신명규(申命圭, 1618~1688), 안핵 겸 순무어사 이증(李增, 1628~1636), 추사 김정희(1786~1856), 응와 이원조도 바로 이 화북포에 내렸다. <김유정 미술평론가(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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