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34)화가 김강훈

[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34)화가 김강훈
나와 타자(他者)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같이 사는 존재
  • 입력 : 2020. 11.09(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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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미학적 가치의 문제
비(雨), 인간성 회복의 예술
한국미, 다양한 인물군 연구




#예술이 품은 미학적 가치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를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미학적 가치를 지녔는가라는 사실이다. 예술은 우리 삶에서 같이 호흡하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예술은 실용적으로 생각하면 무의미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가치론적으로 생각하면 인간 삶의 유익한 정서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은 쓸모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예술 때문에 삶 자체가 바뀐 사람도 있다.

예술에 대한 정의를 생각한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Howard Becker)는 예술을 미학이론에 의해 정의된 작품, 미술관, 박물관도 같이 적절한 장소에서 전시되는 작품들을 사회적 맥락의 차원에서 살피고 있다. 베커는 예술이라고 부르는 형식적 근거에 대해 몇 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김강훈 작, 물고기도 비에 젖는다, acrylic, resin on canvas, 162.2 x 130.3cm, 2020.

예술이라고 부르려면 먼저 예술 작품(artstic product)이 있어야 하고, 예술은 공적으로 소통되며(communicates publicly), 예술은 사람들의 즐거운 경험이 된다(is experienced for enjoyment), 또 예술은 표현 형식이자(an expressive fome), 물리적이고 사회적 맥락에서 정의된다(is defined by its context)는 것이다.

예술의 정의에 대해서는 이보다 더 많다. 예술은 시대·산업·계급 계층·사상·성별에 따라 규정하는 폭이 다르고 복잡하여 예술과 비예술을 분류하는 것 또한 경계가 분명치 않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예술을 주로 제도적으로 정의된 것만으로 생각할 때 비제도, 반제도적인 예술은 소외되거나 제외되기도 한다. 하지만, 서양의 살롱전에서 배제된 낙선전이 후에 인상주의가 탄생 돼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고, 한국의 반체제 미술이었던 민중미술이 오늘날은 80년대 새로운 미술의 지위를 얻기도 한 사례에서 보면, 예술을 정의하는 개념은 시대, 사상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 된다.



#김강훈의 인물화

인물화란 사람을 그린 작품을 말한다. 미술 장르의 한 범주라고 할 수 있으며, 체계적인 교육으로 이루어진다. 미술교육에서 과거에는 가장 비중을 두는 교육이기도 했지만 오늘날은 미술이 그린다는 행위보다 개념화하거나 표현하는 방법론상의 문제로 변하면서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분야가 되었다. 사실상 사진의 등장으로 인물화나 초상화에 변화가 있었고, 그 여파가 인물화의 쇠퇴를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인물화의 가치는 '사진보다는 그림'이라는 말과 같이 다수의 복제술로 둔갑한 사진에 비해, 한 점의 원작(原作)이라는 희소가치를 부여하면서 격조 있는 분야로 여겨지기도 하여, 오늘날도 중요 인물들에게는 사진은 아카이브 형태로, 인물화나 초상화로는 그 사람의 사상과 인품을 드러내는 기념적 수단이 되었다.

김강훈 작가

인물화에 있어 포즈(posture)는 인간의 여러 가지 행위의 동작으로, 일종의 몸짓 언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몸짓은 사람들의 기호(記號)로써 어떤 포즈를 취하게 되면 무엇을 하고 있고,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는 지 알 수가 있다. 또, 그가 거만하거나 예의를 갖추는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 수 있어서 포즈는 일상에서 모든 인간의 동작에서 나오게 된다. 사람 자체가 포즈의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다. 상황에 따라 깨어있을 때부터 잠자는 모습까지 매우 다양한 행위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다양한 인물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김강훈은 중국 중앙미술학원 회화과 학사·석사,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김강훈의 인물화 '꿰다(串)'는 모나리자를 감상하는 여성의 뒷 모습을 그리고 있다. 모나리자가 걸린 전시장의 한 부분을 그렸는데, 관람자의 시선이 모나리자의 얼굴과 같다. 물론 모나리자를 감상하는 한 여성의 모습이지만 김강훈의 의도는 화가 자신을 포함하여 그림 속 감상자를 관람하는 현실의 우리가, 그림 속 감상자를 관찰하는 시선으로 유도되고 있다. 만일 저 그림 앞에 저 각도로 서게 되면, 그림 속의 감상자와 그것을 관람하는 현실의 내가 그 뒤에 서 있게 된다. 그는 이런 방식을 제3자 기호라고 하여 시선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다. 저 작품을 보는 현실의 관람자가 모나리자의 얼굴을 통해 모나리자 앞에 선 그림 속 감상자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럴 때 모나리자가 더 잘 보이게 된다.

김강훈은 인물 수업을 매우 충실하게 수행했다. 그는 중국 유학 시절 한국미를 탐구하기 위해 한복을 입은 모델들을 많이 그렸고, 서양에서 도입된 서양 미술의 한 분야인 인물화를 익히기 위해 다양한 인물군과 만나면서 인물의 특성, 의상 처리, 동작, 얼굴표정 등을 연구했다.

어느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기초는 집을 짓는데 가장 중요한 토대이다. 미술에서 데생은 미술의 기초이다. 이 미술의 기초가 이후 다양한 미술 작업으로 진행될 최선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데 기초를 무시한 위대한 화가는 없었다. 추상 미술가들도 시작은 정확한 형상성을 익히는 데에서부터 출발했고, 개념미술가, 설치미술가들 또한 조형적 구조를 아는 데 이런 기초를 다지고 시작했다. 자연은 하나의 형상들의 집합이고, 그것의 변화작용이기 때문에 우리 세계를 미술적으로 이해하려면 그것들의 조직(組織)과 구성(構成)을 알아야 한다. 그 구조를 이루는 패턴은 자연의 생멸(生滅) 과정에서 조화와 대칭, 부조화와 파괴, 변이가 일어난다. 대상을 그린다는 것은 정확성도 있겠으나, 왜곡, 절제, 생략이라는 기법들을 통해 표현된다. 기초는 바로 이럴 때 사용하는 방법론이 된다. 건설할 줄 알면 파괴하는 것도 쉽다. 현대미술에서 보여준 전통미학의 파괴도 결국 하나의 미학이 되고 마는데 미학 없는 예술은 없고 철학 없는 예술 또한 존재하기 힘들다.



#김강훈의 예술철학, 제3자의 기호

김강훈 작, 꿰다(串), 122cm x 160cm, ink, oil on wood, 2010.

철학은 우리 세계를 탐구하는 하나의 인식론적 방법이다. 이 철학적 방법은 우리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향해 열려 있으며,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향상시키기 위해, 또 우리 세계를 참되게 통찰하기 위해 노력한다. 철학적 성찰은 결국 "안다는 것과 안다고 믿는 것 간의 차이에서, 어떤 것이 '참되고, 옳다'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과 그런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의 구분"이라고 했다(윤형식, 2020).

김강훈의 최근 작업의 주제는 '비(雨)'다. 지상에 내리는 비는 야외에서는 만물이 다 맞는다. 그는 거기서부터 철학적 사유를 시작한다. 우리 세계에서 "나와 타자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같이 사는 존재이고 그 둘의 관계를 온전한 마음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그런 존재자의 등장을 세상에 말하고 싶었다." 작가의 말처럼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맞는 자에게는 공평하다. 인간인 '나'도 물도, 돌, 바다, 산, 꽃, 다른 사람들도 다 맞는다. 모두 다 비를 맞는다는 이유에서 그 각각의 관계들은 독자적이거나 특별하지 않고 서로 평등하다. 평등하기 때문에 보듬을 수 있고, 그런 타자들이기 때문에 서로 협력할 수 있다. 제3자의 기호란 타자를 의식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존재하는 것, 즉, 한 개인이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비를 맞는 것처럼 타자 또한 자기와 다를 바 없는 상태 아래서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시선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 너무나 부족하다. '공쟁이' 거는 일이 난무하고, 패거리 이익 집단이 늘 중심에 있다.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이익되는 쪽에 줄을 선다. 자기에 대한 존엄의 가치가 없는 까닭이다. 이는 지난 시절, 일제 강점기를 겪고 동족 간의 전쟁을 치른 후 친일세력이 득세하고, 또 군사독재에 깊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타자에 대한 배려 없이 개인주의의 극한에 있게 된 것이다. 김강훈은 이런 시대에, 어쩌면 만민평등으로 맞는 비와 같은 제3자의 기호, 즉 절실한 염원으로서의 인간성 회복을 예술철학의 기저(基底)로 삼고 있다.

<김유정 미술평론가(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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