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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입력 : 2021. 01.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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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

바야흐로 OTT(Over The Top: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의 시대다. '보건 교사 안은영'과 '콜'을 다 봤으니 가입을 해지했던 '넷플릭스'에 송중기와 김태리가 출연하는 250억 대작 '승리호'가 독점 공개된다고 하니 재가입을 안 할 수가 없고 '킬링 이브'와 '와이 우먼 킬'을 다 봤으니 구독을 종료할까 했던 왓챠에 '해리포터'시리즈 전편이 올라와 있다는 소식에 구독을 연장한다. 또한 아일랜드 드라마 '노멀 피플'의 심상치 않은 입소문에 '웨이브'역시 덜컥 결재 버튼을 누른다. 뿐만 아니다 티빙에는 다른 플랫폼에는 없는 드라마와 예능의 킬러 콘텐츠 '철인왕후'와 '싱 어게인'이 있다. 24시간, 365일 화면만 쳐다보고 있어도 그 방대함의 백분의 일도 경험할 수 없는 콘텐츠의 파도가 방구석에 앉고 누운 모두를 일렁이고 출렁이게 만든다. 플랫폼에서 컨텐츠를 검색하고 찜하기 버튼만 누르는데 몇 시간이 걸려서 정작 본편은 틀어 보지도 못했다는 말에 아마도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코로나 시대, '오늘 점심 뭐 먹지'의 결정 장애적 고민은 '오늘 뭐를 볼까 혹은 볼 수 있을까'로 변해가고 있다.

 '킹덤'과 '스위트홈' 등 기존 국내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았던 본격 장르물을 오리지널 시리즈로 선보이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 넷플릭스의 성장세가 가장 눈에 띄지만 만만치 않은 장점을 갖춘 후발 주자들과 앞으로 국내 시장에 진입할 디즈니 플러스와 HBO 맥스, 애플TV 플러스까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의 도래가 코 앞에 있다. 여기에 유튜브와 카카오TV 같은 숏폼 콘텐츠의 플랫폼까지 더하자면 볼 거리가 한도 끝도 없다. 이 정도가 되면 모든 플랫폼들은 어떤 콘텐츠를 구비해 놓는 것만큼이나 구비해 놓은 콘텐츠를 어떻게 알리느냐가 중요한 상황이다. '할 일이 아무것도 없고 지루하다'라고 하더라도 이상하게도 하나의 콘텐츠를 고르자고 치면 부족하기만 한 것이 시간이다. 마치 백화점을 몇 시간 동안 헤매고 나서 고작 양말 하나를 덜렁 사서 나오고 대형 마트를 뺑뺑 돌고 돌아 생수 한 병을 겨우 들고 나오는 것처럼 만족을 위한 선택은 어렵기만 하다.

 OTT 플랫폼들은 한 달에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구독 서비스로 이뤄진다. 결국 시청자는 콘텐츠가 아니라 입장권을 사는 것이다. 놀이공원에 들어가는 입장권을 사서 어떤 기구를 타고 기대한 혹은 기대하지 않은 즐거움과 만족을 체험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몫이다. 여기에서 추천이라는 호객 행위가 중요해진다. '누가누가 이게 좋더라, 웬만한 사람들은 다 이걸 본다더라'라는 솔깃함이 결국 시작 버튼을 누르게 하는 동력이 된다. 모든 플랫폼에는 어제의 탑10 같은 베스트셀러 목록이 전시된다. 작금의 화제작들을 보다 보면 정작 보고 싶었던 작품은 뒤로 밀린다. 게다가 영화관에서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웠지만 OTT 플랫폼에서 멈춤 버튼을 누르고 작품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손쉽기만 하다. 결국 보다 만 작품들이 쌓이고 쌓인다. 나의 취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신박한 것 같지만 사실은 혼란스러울 때도 많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시청자 집계를 '해당 작품을 2분 이상 본 유저의 합'으로 계산한다고 한다. 고작 2분. 120초 동안 채널을 유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콘텐츠는 결국 장르화 되고 자극적으로 변한다. 야하다는 입소문, 잔인하다는 구전으로 20년 전 극장에서 관객을 끌어 모은 '옥보단', '쇼킹 아시아' 열풍과 '365일', '스위트홈'의 인기의 원인이 과연 다를까. 나 역시 이 쉽지만 어려운 플랫폼의 여정이 낯설기만 하다. 문화 콘텐츠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나 홀로 집에서 하는 수행이자 학습이라는 생각도 든다. 극장에서 관객들과 영화를 보고 공연장에서 청중들과 음악을 듣고 미술관에서 다른 입장객들과 그림을 감상하는 일은 공동의 지적 호기심이 만들어 내는 공간의 공기 그리고 문화 창작물을 공유하는 예의와 존중을 통해 집단의 취향을 공고히 만들어가는 체험의 학습이었다.

이토록 쉽게 순간을 멈출 수 있는 갑의 권력이 생긴 우리는 어쩌면 앞으로 리모컨과 스마트폰에 얹은 손가락을 자주 붙잡고 싶어 지지 않을까. 재미가 없다는 말로 많은 것을 무력화할 스스로의 결정을 과연 후회하지 않을까? 아니면 혹은 넘쳐나는 재미의 파도에 몸을 싣고 그저 무념무상의 항해를 계속하게 될까. 그리고 그 끝은 어디일까. 멈춰진 화면을 눈 앞에 두고 생각에 잠긴다. 내가 무엇을 보고 싶었던 것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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