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목요담론]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고사리 형제처럼

[김완병의 목요담론]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고사리 형제처럼
  • 입력 : 2021. 04.22(목)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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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간 도로변에 렌터카가 아닌 자동차들이 가득하다. 가을에는 벌초 행렬로 도로가 막힐 정도이지만, 봄철엔 고사리순을 꺾으러 나온 인파로 북적인다. 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전에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더 일찍 집을 나선다. 매년 가는 지역이 따로 있기도 하지만, 남들이 꺾기 전에 먼저 차지해야 기쁨이 두 배이다. 특히 억새 군락 사이에서 키 큰 고사리순을 보면, 산삼을 횡재한 듯 황홀한 기분이 절로 생긴다.

식용 고사리는 대개 햇빛이 들어오는 숲이나 들판에 고루 분포한다. 아침 햇살에 더 잘 보이며, 낮에는 그늘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초보자는 고사리가 올라와 있어도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친구끼리 또는 부부끼리 가도 각자가 아는 방식으로 캐며, 심지어 시어머니도 며느리에게 비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고사리를 많이 캐려면, 지인의 고급 정보를 공유하거나 언제 어디에 많이 나는지 잘 메모해둬야 한다. 관심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것도 보이지도 않으며, 들어본들 먹어본들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고사리의 뿌리줄기는 1m 이상을 땅속에서 자라면서 곳곳에서 잎이 돋아난다. 잎은 모양과 크기가 종에 다르며, 잎.줄기.뿌리의 구별이 뚜렷하다. 또한 꽃이 피는 대신에 잎 뒷면에 모여 있는 홀씨로 번식하거나 뿌리줄기를 뻗어 거기서 새순을 내기도 한다. 이 새순이 식탁에 오르는 것이다. 조금만 늦어도 잎으로 변해버린다. 특이하게 제주의 3월부터 4월말까지는 '고사리장마'라 해서 축축한 비 날씨가 이어지는 날이 많아 고사리가 자라기에 딱 좋다. 가게 영업을 잠시 중지해야 할 정도로, 제주산 고사리의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고사리는 꽃을 피워서 나비와 새를 유혹하지 않으며, 소와 말은 아예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사실 익히지 않은 고사리순에는 비타민B1을 분해하는 티아미나아제가 들어 있어서, 다량의 고사리를 섭취할 경우 비타민B1 결핍증인 각기병에 걸릴 수 있다. 이 병에 걸리면 신경 조직, 특히 팔과 다리의 신경이 약해지고 근육이 허약해진다. 가축 또는 노루와 같은 야생동물이 고사리를 건들지 않는 이유이다.

제주 속담에 중에 '고사린 아옵 성제인다(고사리는 아홉 형제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고사리는 번식력이 아주 강해서 아홉 번씩이나 꺾어도 계속해서 새순이 돋아난다는 의미이다. 제주 사람들이 제삿날이나 명절 때에는 꼭 올리는 음식 중에 하나가 고사리다. 자손이 번성할 수 있도록 후사를 잘 봐달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그러니 고사리순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에게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서 준비해야 한다.

코로나 방역 수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재난지원금 발표에는 귀를 쫑긋 세우다가도, 집합금지나 사회적 거리 두기 격상에는 분노할 정도로 민감하다. 지칠 대로 지친 시민들을 달래기 위해서는 정성을 다한 시책을 제시해야 한다. 고사리가 지천에 깔려있어도 삶지 않으면 효용이 없듯이, 시민들이 공감하지 못하면 곤란하다. 한 번 아니라 아홉 이상 숙여서라도 올바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고사리순을 꺾듯이 두루두루 살펴야 고사리 삼행시(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해합니다)가 저절로 퍼지는 것이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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